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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단독] 외국인 재판 ‘엉터리 통역’ 차단… 통·번역 평가시험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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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1분 넘는 선고, 통역 불과 20초 / “사법서비스 질적 저하 야기” 지적 / 대법원, 8월 서울권역서 첫 실시

세계일보

“제대로 통역한 것 맞습니까?”

지난해 말 한 고등법원 판사는 법정에서 파키스탄 피고인을 통역하던 통역인에게 되물었다. 성범죄를 저지른 뒤 1심에서 실형을 받고 항소한 30대 파키스탄 A씨 2심 선고였다. 판사는 A씨 항소를 기각하고 1분 넘게 기각사유와 상고 방법을 설명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국적 통역인의 통역은 20초에 그쳤고, 판사가 이를 의아하게 여겨 되물은 것이다.

올해부터는 법정에서 이런 어색한 장면이 사라질 수 있을까. 대법원이 오는 8월 전국 법원 단위 통·번역인 평가시험을 최초로 실시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최근 ‘통·번역인 평가에 관한 용역 제안요청서’란 사업 용역을 공고했다. 세계일보가 이날 확인한 사업 제안서에 따르면, 대법원은 오는 8월 말 전국 응시자 300∼500명을 대상으로 법원 통·번역인 평가시험을 실시한다. 이에 대법원은 해당 시험을 주관할 사업자를 물색 중이다. 대법원은 제안서에서 “현재 각 법원이 통·번역인을 자체 선발해 통일된 기준이 없고, 별다른 검증절차도 없어 (법정 통·번역) 정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당한 수가 정식 통·번역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 사법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야기한다”며 “검증을 통해 적정한 능력 등을 겸비한 통·번역인을 선발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법조계에선 법원 통·번역인 양적·질적 문제에 대한 비판이 잇달았다. 이날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서울권역 5개 지방법원의 통·번역인 인력은 575명이다. 반면 2017년 기준 서울 권역 지방법원의 외국인 사건 수는 2877건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통·번역인 1명이 동시에 2~3개 법원을 담당한다. 질적 문제도 제기됐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동남아인이나 파키스탄인 재판 등의 경우 통·번역을 우리나라에 오래 산 해당 국가 현지인들이 맡아서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매년 시험을 시행해 일정 점수 이상을 통과할 경우 법정 통·번역 지원인 지원 시 혜택을 제공하는 방안 등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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