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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배연국칼럼] 文정부의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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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보다 낫다는 선민의식은 / 비과학적 비민주적 행태일 뿐 / 우월감에 빠지면 진보 멀어지고 / 반드시 자연도태의 재앙 맞을 것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연초 방송기자의 도발적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즉답을 피했지만 이제야 그 답을 알 것 같다. 바로 유전자다. 남보다 우월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선민의식 말이다.

아마 많은 국민이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경제성장이 세계 주요국 중 꼴찌로 떨어졌는데도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자신한다. 환란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 와중에 “경제가 성공적으로 가고 있다”고 자찬한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획기적으로 고용이 개선되고 있다”고 감언을 늘어놓는다. 알고 보니 모두가 유전자 탓이었다.

세계일보

배연국 논설위원


흉중의 유전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때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한창 일던 무렵이었다. 청와대는 “문재인정부에는 사찰 유전자가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선한 유전자를 가진 문재인정부에 어떻게 나쁜 유전자가 존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자신들은 촛불로 집권한 정의로운 세력이고, 그런 정의에는 오류가 있을 리 없다는 논리다. 설혹 나쁜 게 발견됐다손 치더라도 청와대 표현을 빌리자면 잘못 섞여 들어온 ‘불순물’이거나 자신들의 순수성을 흐리는 ‘미꾸라지’일 뿐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거론한 ‘우월한 유전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유럽의 왕족이든, 아프리카의 노예든 유전자 구조는 99.9%가 일치한다. 인간과 침팬지 간 유전자 차이도 고작 1.6%에 불과하다. 지구상에서 탁월한 유전자를 믿는 곳은 아리안족의 우월성을 주장한 히틀러와 백두혈통을 떠드는 북쪽의 김씨 왕조뿐이다.

삐뚤어진 선민의식은 민주주의에 치명적이다. 인간은 어떤 생각이나 피부색을 가졌든 모두 평등하고 존엄하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정신이다. 대통령이 역설한 포용과 통합도 여기서 나온다. 나와 너를 혁명과 적폐로 가르는 순간 국민통합은 물 건너간다. 정의와 절대선의 환상에 빠지면 모든 민주적 가치는 빛을 잃는다. 우리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에서 그 위험성을 목도했다.

외부의 현상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인간이 취하는 태도는 대략 두 가지다. 외부의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부인하는 것! 전자의 경우 과거의 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현상을 진단한다. 그런 연후에 자신의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취합해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유사 이래 지속된 인류의 진화 원리이자 진보의 방식이다.

반면 후자는 사이비 광신도의 행태와 흡사하다. 지구의 종말을 예언했다가 하늘의 심판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 덕분에 인류가 구원받았다”고 둘러댄다. 진보를 자처하는 집권세력의 내로남불 행태와 닮지 않았는가. 이들은 명백한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핑계를 댄다. 정책의 약효가 먹히지 않으면 인구 탓, 날씨 탓, 해외 탓으로 돌린다. 부동산투기를 손가락질하다가도 막상 그 손가락이 자기 쪽으로 향하면 “집 세 채가 뭐가 문제냐”고 되받는다.

진보와 발전의 대전제는 자신의 오류 인정이다.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도 인간에게 오류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류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다.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면 잘못을 고치지 못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를 짓밟는 ‘사이비 진보’에 불과하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 보존, 자기 복제, 그리고 진화라는 본질적 특징을 지닌다. 집권세력처럼 자기 보존과 복제의 코드인사만 반복하면 정권의 진화는 불가능해진다. 결국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자연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적자생존의 준엄한 법칙이다.

나치의 광기를 다룬 영화 ‘아이히만 쇼’에서 기자는 이런 경고를 보낸다.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거나 코의 모양, 피부색, 종교의 차이로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증오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아이히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 사람을 선악으로, 유전자로, 피아로 가르는 광기가 국가를 쇠망으로 몰고 있다. 나만의 기우인가.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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