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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밤은 괜찮다지만… 체벌·학대 경계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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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체벌 금지' 배경과 문제점

자녀 학대 빌미삼는 경우 생기자 "법 조항 손봐야" 목소리 커져

정부가 '체벌'은 부모의 징계권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민법에 명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부모가 민법에 적힌 징계권을 빌미 삼아 아이를 쓸데없이 때리지 못하도록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꿔나가겠다는 취지다.

징계권이란 친권자가 아이를 가르치거나 보호하기 위해 야단칠 수 있는 권리다. 1958년 민법을 제정할 때부터 줄곧 인정되어온 권리지만, 사회 분위기가 바뀌면서 "징계권을 다룬 법 조항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번 민법 개정 방안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징계권에 체벌이 들어가지 않게 못 박는다고 당장 큰 변화가 오진 않는다. 정부는 부모의 징계권 그 자체는 인정하되 '체벌은 안 된다'는 조항을 새로 넣겠다는 방침이다. 처벌 조항을 새로 넣을 계획은 없다.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아이를 혼내다 꿀밤 한 대, 회초리 한 대 때렸다가 경찰에 불려갈 일은 없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어떤 이유로든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고 인식을 바꿔나가자는 거지, 처벌을 강화하자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법이 아이 때리는 '핑계'돼선 안돼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뒤, 명백하게 아이를 학대하고도 민법상 징계권 덕에 면죄부를 받은 부모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아동 학대 혐의로 법정에 선 부모들은 여전히 민법상 징계권 조항에 기대 "아이를 훈육하려던 것뿐"이라고 변명하기 일쑤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 "징계권이 학대의 빌미가 되지 않도록 민법 조항 자체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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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나왔다. 우리나라는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매를 아끼면 자식을 버린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았다. 지금도 아이를 엄하게 키우는 것과 아이에게 고통과 모욕을 주는 걸 혼동하는 부모가 일부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는 2013년 5454건에서 지난해 1만8756건으로 늘었다. 전체 아동 학대에서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70~80% 수준이다.

◇'징계권'이라는 말도 손봐야

법무부 관계자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범위의 체벌은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민법 개정은 징계권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행을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 명확히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지원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법으로도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넘은 경우에는 아동 학대로 처벌할 수 있다"며 "민법 개정이 처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신 부모들에게 어떤 경우건 매를 들어선 안 된다는 '심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주는 효과는 클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때리는 건 '불법'이라고 사회적으로 합의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정부는 '징계권'이라는 단어도 손보려 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징계는 단체나 조직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이를 부모·자식 간 관계에서 쓰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체벌과 학대의 경계

아동 학대 전문가들은 환영했다. 공혜정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대표는 "민법 개정을 통해 우리 사회에 올바른 훈육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체벌과 학대의 명확한 경계가 없는 상황이라 일부 부모는 "꿀밤·회초리 한 대 때리는 것도 체벌이고 학대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국회 천정배 의원이 '폭행이나 상해로 볼 수 있는 정도의 체벌은 징계권의 범위에서 빼야 한다'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냈는데, 이때도 법안 검토 과정에서 "어디까지를 합리적인 훈육으로 볼지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좀 더 필요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우리 사회는 아직 '부모가 자식을 엄하게 길러야 한다'는 인식도 강한 편이다. 복지부가 2017년 시행한 '아동 학대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응답자 77%가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경찰 등 수사기관도 구체적인 법조문이 아니라 기존 판례를 잣대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체벌과 학대를 구별하고 있다. 아이가 멍들거나 다치도록 때리거나, 주먹으로 배를 때리거나 밀어서 넘어뜨리면 학대로 보는 식이다.





[홍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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