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교부가 도마에 오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통령 방문국의 국명 오기(誤記)부터 회담장에 걸린 구겨진 태극기, 일부 대사의 폭언·갑질 등 온갖 실책과 사고가 잇달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에 비할 바 아닌 중대한 외교 참사다. 재외공관 중 가장 핵심인 주미 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이 야당 정치인에게 외교 기밀을 유출한 것은 외교관 한 명의 일탈로 볼 수 없는, 우리 외교의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다.
외교관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직업윤리와 책임성을 훼손한 행위에 대해선 인사상 징계는 물론이고 사법적 책임도 엄중하게 가려야 한다. 그런 참사를 낳은 외교부의 기강 해이와 관리체계, 나아가 강경화 장관 체제에 문제가 없는지 면밀히 점검하고 책임 있는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야당 의원이 외교기밀을 무책임하게 공개한 행위도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숨기기에 급급한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지만, 한건주의 폭로로 국익을 훼손한 것은 분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외교의 대외적 신뢰 상실이다. 외교적 협의, 특히 정상 간 대화는 합의하거나 양해한 내용만 외부에 공개한다. 이런 최소한의 신뢰를 바탕으로 민감한 현안을 놓고 의견도 교환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그런 외교의 기본을 무너뜨렸다. 앞으로 어느 나라가 한국을 믿고 외교 협의나 정보 공유를 하겠는가. 외교 전반에 대한 근본적 수술 없이는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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