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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죽기 전 멜로디]모든 새가 미리 녹음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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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에서 만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노래 대역 가수 마크 마텔은 “프레디 머큐리 가창의 미학은 자기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투쟁과 고통에서 나온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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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

그날 받은 충격은 산타클로스의 정체에 관한 일 못잖게 중대했다.

어릴 적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립싱크의 존재를 알게 된 날. ‘그대여 가지 말라’ 호소하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한 일이 열창이 아니었다고? 녹음된 노래에 맞춰 입술 달싹거리기였다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워졌다. 화면 속 형, 누나들의 진심을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지. 꼬마 시절 날 울린 10대 페이크 뉴스를 꼽는다면 그중 하나에 들리라.

#1. 기술은 진보하고 페이크는 진화한다. ‘오토튠(Auto-Tune)’은 인류의 음악 제작 방식을 송두리째 바꿨다. 1997년 9월, 미국의 오디오 기술 기업 ‘안타레스’사(社)가 출시한 플러그인. 대강 부른 노래도 정확한 음정으로 조절해 주는 강력한 포스트프로덕션 소프트웨어다. 녹음된 음의 주파수(음정)를 인위적으로 조정해 버릴 수 있다. 그 전에는 제아무리 노래 잘하는 가수라도 음반 녹음이 고역이었다. 수백 개의 음표를 완전무결한 음정으로 불러내기 위해 수십, 수백 번 다시 불러야 했기에. 이젠 아니다. 오토튠 덕이다. 녹음실 사용 시간은 혁신적으로 짧아졌다. 이제는 가창력으로 이름난 가수도 대개 오토튠을 쓴다. 언젠가 가수 A 씨의 녹음을 담당한 엔지니어는 “그의 노래에서 플랫(절대음보다 살짝 낮게 부른 것)은 잡고(오토튠으로 보정하고) 샤프(높아진 것)는 놔둬 자연스러움을 살렸다”고 했다.

#2. 페이크는 딥페이크(deep fake)로 진화한다. 문서 위조가 포토샵 등장 이후 사진 위조로 진화했듯. B의 얼굴과 C의 몸을 결합한 ‘합성 포르노’는 동영상 수준까지 올라왔다. 얼마 전 연예인의 합성 포르노가 퍼진 것은 우리 사회도 이제 딥페이크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줬다. 미래를 상상하니 아찔하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까지 떠오른다. 눈앞에 서 있는 당신이 그 당신인지 아니면 당신의 딥페이크인지 구별할 수 있을까.

#3. ‘살아 있는’을 뜻하는 ‘라이브’ 무대의 개념도 바뀌고 있다. 전문가도 ‘이 무대가 얼마나 라이브인가’를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립싱크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절묘해진다. 현장감과 완벽한 노래란 두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묘수가 일반화됐다. 이를테면 리허설 때 녹음한 노래를 본공연 때 틀고 립싱크 하는 것. 컨디션 좋을 때 설렁설렁 안무까지 곁들이며 녹음해 두니까 입만 잘 맞추면 숨소리까지 감쪽같다. 이 ‘페이크 라이브’ 녹음을 아예 전문 스튜디오에서 미리 해 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 가요 기획사의 음향 엔지니어는 “리허설 녹음도 잘 안 돼 몇 날 며칠 걸리는 가수들이 평생 ‘100% 라이브’라는 모험을 하겠냐”고 했다. 미리 녹음한 노래를 여러 겹 깔아 두고 실시간 가창을 조금씩 섞는 방식도 애용된다. TV와 유튜브의 많은 음악 프로그램은 녹화 때 녹음한 가창을 오토튠으로 보정해 방영한다. 즐겨 공유되는 ‘××× MR(반주) 제거 영상’이나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춤과 노래를 라이브에서 동시에 완벽하게 소화한다’는 말의 순도를 누구도 보장하기 어렵다.

#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고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 대역을 한 캐나다 가수 마크 마텔을 얼마 전 만났다. “머큐리와 저는 타고난 음역이 테너와 바리톤 사이로 낮습니다. 따라서 치고 올라가는 고음이 더 절박하게 느껴지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인간적 열정은 기계 제작의 매끈함을 넘는 감동을 준다.

얼마 전 영국 팝스타 에드 시런의 공연이 떠올랐다. 공연 중반 한두 차례 음정이 엇나가는 순간, 그가 더 좋아졌다. 전문가조차 ‘몇 % 라이브인지’를 분간하기 힘든 시대에 알아주든 말든 분투하는 그가 ‘진짜 지금 내 앞에 서 있다’는 걸 느꼈다.

#5. 먼 훗날 아침, 커튼을 젖히고 히치콕의 ‘새’보다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될까 두렵다. 정원의 모든 새가 미리 녹음된 완벽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언젠가 만난 포크 가수가 말했다. “저희도 이번 앨범엔 오토튠을 쓸까 해요. 우리만 음정이 불안하면 억울하잖아요.”

누군가는 그랬다. “어차피 분간 못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 가수와 같은 시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콘서트의 매력은 충분하다”고. 이제부터라도 정신수련을 해야겠다. 눈앞에서 손 흔드는 가수와 “고마워, 사랑해”라는 그의 말만으로도 내 가슴 충분히 적시도록….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