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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태훈]관치에 숨 막히는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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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장서-학점까지 정부가 관여… 포지티브 규제로는 대학발전 요원

동아일보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교수 월급이 10년째 동결되다 보니 교수들의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직장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교수들이 대학 행정에 매우 협조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대학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8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수업을 더 하라고 요구해도 군말 없이 따른다고 한다.

요즘 사립대는 저출산으로 입학생 수가 감소하고 11년째 등록금이 동결돼 재정상황이 크게 악화하고 있다. 2009년 대학 등록금은 사립대가 평균 708만 원, 국립대가 평균 431만 원이었지만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10년간 변동이 없었다. 재정여건이 대학을 근근이 유지하는 정도밖에 안 되다 보니 대학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과감한 투자나 연구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정부가 사립대 법인이 소유한 토지에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까지 부과하는 지방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면서 예기치 못한 세금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대학의 재정여건과 연구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데도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늘어만 간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불만이다. 대학교수들은 교육부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억지로 만들어 감시, 감독한다고 애로를 토로한다. 일례로 교육부가 대학 도서관 운영까지 관여한다는 것이다. 2015년 시행한 대학도서관진흥법에 따라 교육부 장관은 5년에 한 번씩 대학도서관진흥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교육부의 종합계획에 기초해 각 대학 총장은 대학별 도서관 발전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사항을 학칙으로도 정한다. 법에는 또 교육부가 도서관 시설과 인력, 장서 등을 잘 갖췄는지 등을 평가해 대학 도서관에 대한 재정 지원에 반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교수들은 “도서관 관리는 대학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 교육부가 일일이 규제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이 법은 대학의 연구경쟁력 향상에 기여한다는 좋은 목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것이어서 불만의 화살을 모두 교육부로 돌릴 수 없는 측면은 있다. 교육부도 대학 측의 이런 요구를 반영해 지난해 12월 마련한 2차 도서관진흥종합계획에는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도서관 발전계획을 마련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을 담았다.

교수들은 또 학점 주는 일도 교육부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요소 중 ‘학생 평가의 적정성’ 항목에 근거한 것이다. 상대평가를 하라는 명시적인 조항은 아니지만, 대부분 대학의 교수들은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상대평가를 철저히 지킨다고 한다. 성적평가에 학생들의 출결을 반드시 반영하고 A, B학점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상대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취업난으로 학생들이 기를 쓰고 공부하는 바람에 점수를 낮게 줄 학생이 별로 없는데도 어쩔 수 없이 낮은 학점을 줄 수밖에 없다고 교수들은 고충을 털어놓는다.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며 각종 ‘권고’를 하고 있지만 대학 현장에서는 권고가 곧 ‘법’으로 통한다. 혹여 권고를 안 따랐다가 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사립대의 재정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교육부의 말발이 더 잘 먹힌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담고 있는 법이나 권고라고 하더라도 대학이 거추장스러운 규제로 인식한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교육부가 수많은 것에 관여하고 결정하는 현재의 ‘포지티브’ 규제로는 효과적인 대학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태훈 정책사회부장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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