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2669476 0362019052352669476 01 0101001 6.0.7-RELEASE 36 한국일보 0

화웨이 거래하자니 미국 눈치, 끊자니 기업 타격… 정부 진퇴양난

글자크기
미중 무역전쟁 속 ‘샌드위치’ 우려… 동맹국 동참에 한국 포함될 조짐

전문가들 “정부가 취할 조치 없어 미국 요구 거절한 유럽 기준 참고해야”
한국일보

20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화웨이 매장 밖에서 한 여성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계속 거래하자니 미국 눈치가 보이고, 그렇다고 거래를 중단하자니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중국 최대 통신장비 생산업체 화웨이(華爲)와의 거래를 지속할지 여부를 놓고 정부가 진퇴양난 처지에 놓일 위기다.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전쟁’ 동참 요구 대상 동맹국에 한국도 포함될 조짐이 보이면서다. 다만 아직 압박이 노골적이지 않고 안보 현안도 아닌 만큼 중국의 보복을 불렀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사태 때와 달리 분리 대응이 가능하리라는 게 정부의 기대다.

외교부 당국자는 23일 “미측은 5세대(5G) 장비 보안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우리도 이런 입장을 알고 있다”며 “한미 양국은 이 이슈에 관해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정부는 5G 상용화에 따른 보안 문제에도 계속 주의를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 정부는 한국 외교부를 상대로 여러 채널을 통해 화웨이 장비에 보안상의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꾸준히 전달해 왔다. 미 상무부가 16일(현지시간) 화웨이와 68개 계열사를 거래 제한 기업 명단에 올린 건 화웨이가 미국의 안보나 외교적 이익에 반하는 활동에 연루돼 있다고 판단해서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가 자사 통신장비에 백도어(인증 없이 전산망에 침투해 정보를 빼돌릴 수 있는 장치)를 몰래 설치해 나중에 중국 정부의 지령에 따라 기밀을 훔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속내는 다르다는 게 통신업계의 해석이다. 안보 위협을 걱정하는 척하지만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 5G를 선도하는 업체인 화웨이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라는 미국의 동맹국 대상 압박은 중국과 통상(通商) 분쟁 중인 자국의 편에 서달라는 뜻이라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일단 정부가 난감해진 건 사실이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대북 공조가 절실한 우리 입장에서 핵심 동맹국이자 대북 협상 당사자인 미국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더욱이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대만 등이 미국의 뜻에 따라 거래 중단에 참여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이 경제 보복을 가해올 경우 우리 기업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2년 전 사드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일각의 우려다. 북한 미사일 도발 대처를 명분으로 한미가 2016년 7월 주한 미군기지 사드 배치를 공식화하자 자국 안보에 사드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중국이 당시 우리에게 보복을 가했고, 그 여파로 2017년 한 해 동안 한국이 입은 직ㆍ간접적 피해가 최소 8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현대경제연구원)도 나왔었다.

하지만 설령 화웨이 장비에 보안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와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 대기업 관계자는 "민간에 깔려 있는 통신망을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다른 망으로 주도해 대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사드 사태와는 사안의 성격이 판이하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안보가 아닌 통상 이슈인 데다 기업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화웨이와의 거래 문제는 한미중 3국에 제한된 안보 이슈인 사드 사태와 다르기 때문에 미국 제안을 무조건 수용할 필요가 없다”며 “사드 사태를 키운 게 실기(失期)였던 만큼 프랑스나 독일 등 미국의 거래 중단 요구에 호응하지 않는 유럽 국가들의 기준을 참고하고 그들과 연대해 신속하되 일관된 원칙을 유지하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