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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유신모의 외교포커스]대북식량지원은 과연 인도주의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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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지금까지 한·미 정부의 대북 식량지원이 정치적 고려 없이 이뤄진 적은 없다. 그래서 한·미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말할 때마다 불편함이 느껴진다.

경향신문

1985년 에티오피아를 철권통치하던 멩기스투 사회주의 정권이 반군 지역에 식량·의료지원을 중단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로널드 레이건 미국 행정부는 국내적 반대를 무릅쓰고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결정한 적이 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 말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는 것은 재난이 아닌 정치 행위로 초래된 인도주의적 위기에 다른 나라가 순수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관여한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국가 간에 인도주의라는 명분으로 이뤄지는 조치들이 정치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다.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19년 미국이 독일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한 것은 독일과 소련의 밀착을 막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미국의 식량지원은 중동·남미 등 정정이 불안한 지역에서 외교적 도구로 활용돼왔다.

1996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은 CBS 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에서 배고픔의 고통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미국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당시 이라크에 가해진 가혹한 경제봉쇄는 취약계층인 어린이·노약자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보다 더 많은 50만명의 어린이가 식량·의약품 부족으로 사망했는데 과연 경제봉쇄 조치가 그 정도의 희생을 감수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올브라이트 장관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세계를 경악시켰다.

북한 문제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때로는 대화 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때로는 폭발 직전까지 차오른 군사적 긴장의 압력을 조절하기 위해 한·미는 인도적 지원을 활용해왔다. 북한 역시 인도적 지원과 정치 행위를 분리하지 않는다. 북한은 대북 식량지원을 ‘신뢰구축 조치’라고 표현한다. 인도적 지원을 정치적 신뢰관계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2012년 북·미 2·29 합의는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과 우라늄농축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은 24만t의 영양지원을 한다는 것이 골자다. 핵활동을 중단하는 ‘군사 조치’와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인도적 조치’를 맞바꾼 합의다. 작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에는 북·미 관계개선·비핵화 등과 함께 미군 유해 송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사업이 ‘정치적 의무’로 한 문서에 같이 담겨 있다.

이렇듯 북한 문제에서 인도주의적 조치는 정치 행위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됐지만 아무도 이런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지 않는다. 북한 문제에서는 인도주의적 조치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모두가 당연시할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지금 한·미는 다시 대북 식량지원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런데 계산법이 각각 다르다. 한국은 대화 교착상태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미국은 제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식량지원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의 대북 제재는 정상적인 수준을 넘어 유엔 정신에 반하는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 2016년을 기점으로 대북 제재의 목적이 ‘핵무장을 막기 위한 것’에서 ‘완성한 핵을 포기하도록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처럼 강력한 제재로 북한에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하고 국제적 비난이 일게 되면 제재가 무너진다. 인도적 위기를 초래한 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별도로 해야 하는 기막힌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미 모두 대북 식량지원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안다’. 그러니 이제 식량지원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낯간지러운 레토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할 생각이라면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지 말고 다른 조건을 달아야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절대량의 부족 못지않게 분배·정책·거버넌스 등의 문제가 중요한 원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경제·농업·복지·보건정책의 개혁을 조건으로 제시하거나, 하다못해 북한에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송환을 협의하는 조건이라면 ‘인도주의적 식량지원’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 찬성할 수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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