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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중성화 후 방사’ 제도 없던 시절, 길고양이의 삶 일깨워준 ‘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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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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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지(사진)는 노랑둥이 고양이다. 꼭지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 개인 주택과 상가가 혼합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다. 녀석은 위험한 도로에서의 상시적인 죽음의 위험과 적대적인 사람들의 혹독한 시선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은 마당이 아늑한 어느 집 처마 밑에서 구청 ‘유기동물’ 포획자에게 잡혀 동물보호소로 보내졌다. 2007년 봄의 일이다.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길고양이들은 햇볕을 쬐며 새끼 낳을 준비를 한다. 부쩍 이동량도 많아지며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몰려다니기도 한다. 짝을 찾기 위해 발정 소리를 내기도 하고, 수컷들은 자기들끼리 힘겨루기를 하며 자신을 입증하곤 한다. 고양이들로서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고, 권리이며 생존을 위한 필수적 행동들이다. 새벽에 구애하며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는 사람들의 하루를 청량하게 해 준다. 그러나 하루의 고단한 일상을 마친 사람들이 수면이나 휴식을 취할 시간에 고양이들이 내는 소리는 환영받지 못한다. 새와 달리 고양이의 구애 소리는 사람 아기 울음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동물보호소로 잡혀간 길고양이들의 여로는 딱 두가지였다. 거기서 죽거나 ‘입양’되는 것. 유기동물보호소는 집을 잃은 동물을 일정 기간 보호하다 보호자에게 인계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거리에서 태어나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 데다 보호자가 있을 턱이 없는 한국 길고양이들은 거리의 오물을 치우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잡혀갔다. 고양이들은 보호소에서 기약 없이 방치되다 곡기를 끊거나 질병에 걸려 죽고, 살려고 버틴 일부도 보호기간 경과 후 살처분됐다.

갓 부화한 오리는 처음 본 대상을 어미처럼 따라다닌다. 오리만큼은 아니지만, 고양이들도 어릴 적 경험이 평생 삶의 모습을 좌우하는 각인기(sensitive period)가 있다. 대략 생후 2주에서 8주까지 사람의 손길과 다정한 음성을 접한 고양이들은 사람과 친화적인 고양이로 자란다.

한국 거리의 사람을 두려워하는 수많은 길고양이는 우리 사회가 고양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길고양이들에게 사람은 달리는 차량이나 포식자처럼 무섭고, 피해야 할 대상이다. 꼭지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전형적인 길고양이였다. 현재는 서울시 등 여러 지자체에서 길고양이를 포획 후 중성화, 방사(TNR)하고 있다. 동물보호법에 법적 근거가 마련된 덕이다. 하지만 꼭지가 잡혀갔을 당시엔 이런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녀석이 보호소에 잡혀간 이상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꼭지가 포획된 때보다 한 해 앞서 나는 동네 고양이들 보살핌과 중성화, 방사를 시작했다. 아직 국내에 없던 제도여서 해외 자료를 뒤지고, 수의사들의 조언을 구하며 진행했다. 나는 꼭지를 살리기 위해 ‘입양 신청’을 했다. 포획돼 자루에 담겨 동물보호소로 갔던 녀석은 그렇게 돌아왔다. 꼭지는 수컷 성묘였고 얼마 전 영역으로 유입된 녀석이었다. 꼭지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중성화 수술과 귀표식을 받게 한 후 방사했다. 당시로선 불법이었다. 이후 매일 나타나던 꼭지가 다시 사나흘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아늑한 마당을 잊지 못해 재포획된 이 철부지를 다시 동물보호소에서 찾아와야만 했다. 중성화 표식까지 돼있었지만, 아직 사회는 그 의미를 인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현행법과 제도의 외곽에서 위태롭고, 외롭게 나와 꼭지의 오랜 동행이 시작됐다. 49일간 장마가 계속된 2013년, 녀석과 돌연 이별을 겪어야 했던 날까지.

경향신문

고양이 한 마리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물으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 꼭지는 이 세상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해 준 존재였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물들에게 덧씌워진 오해가 풀릴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 준 전령이기도 했다.

꼭지와 꼭지의 가족, 그 외 수백마리 고양이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과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다. 이제 꼭지가 이끄는, 이상하도록 아름다운 고양이들의 세상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동물권행동 카라 전진경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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