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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옆 징검다리 건너는 ‘고양이 쇼’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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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캣츠’ 공연에 “동물 본성에 어긋” 항의 빗발

동물 수 축소 등 변화 줬지만 공연을 위한 감금 자체가 학대

경향신문

어린이대공원 동물공연업체 애니스토리의 공연 중 고양이가 물가 바로 옆 징검다리를 점프해서 건너는 모습들.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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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애니스토리 공연장에서는 활기찬 음악과 함께 등장한 고양이 분장의 조련사가 무색해질 정도로 적은 관객들만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대공원 및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을 빼면 20여명에 불과한 관람객만 입장하다보니 객석은 텅 비어 있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약 800석의 객석이 꽉 차 통로에도 앉아야 했던 인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은 한국 사회에서 동물쇼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어린이대공원 내에서 운영되는 애니스토리 공연장에서 한 고양이가 물가에 설치된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으로 인해 동물학대 논란이 일었다. 고양이의 습성에 적합하지 않은 공연이라는 항의 민원도 어린이대공원이 소속된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 다수 올라왔다.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은 이날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이 쇼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문제가 된 공연은 어린이대공원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공연을 진행하는 업체인 애니스토리의 동물쇼 ‘캣츠’다. 고양이 분장을 한 조련사와 개 분장을 한 조련사, 개의 주인 역할을 맡은 조련사 등이 고양이 외에도 원숭이, 물개, 앵무새, 미니피그, 펭귄 등을 이용해 평일 5회, 토요일과 공휴일 7회의 공연을 하고 있다.

논란이 된 동영상 속 고양이는 이날도 조련사와 함께 객석과 물개가 공연을 하는 풀장 사이에 설치된 플라스틱제 징검다리를 점프해서 건너는 모습을 연출했다. 고양이의 신체능력상 1m가 채 안되는 거리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은 별것 아니긴 하지만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공연을 지켜본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도 “굳이 고양이를 쇼에 동원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는 반응을 보였다.

원숭이가 두 다리로 걸어나와 양철통 속에 들어가는 장면이나 미니피그 한 쌍이 무대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 등 신기하고 귀여워 보이는 장면들도 연출됐지만 실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들 장면 역시 편한 마음으로 보기는 어려운 모습들이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전진경 이사는 “원숭이가 두 발로 걸어나온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보기 어렵고 긴 시간 훈련을 거쳤을 것”이라며 “미니피그의 경우 작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개체들을 동원하고 있을 텐데 성장하면서 커진 개체들을 어떻게 처분했는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겉으로 보이는 무대보다 공연을 하지 않을 때 동물들이 갇혀 있는 사육장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진경 이사는 “쇼를 하러 나올 때 모습이 운동을 하러 풀려 나오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사육장은 비좁고 열악한 상태”라며 “고양이의 경우 수컷 11마리, 암컷 3마리를 보유하고 있는데 중성화 수술도 시키지 않은 상태라 공연을 하지 않을 때도 가둬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니스토리의 동물쇼가 사회적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원숭이들을 이용한 쇼를 비롯해 동물학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 업체는 계속해서 동물 수를 줄이고, 쇼에 동물을 유기하지 말자는 등의 메시지를 담는 등으로 변화를 꾀한 바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변화를 준다 해도 동물쇼는 동물의 본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시킬 수밖에 없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 중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동물복지를 따지지 않더라도 동물쇼 자체가 볼거리, 놀거리가 많아진 현대사회에서 점점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관람객의 급감 역시 이를 방증한다. 동물보호단체에 따르면 이 업체 역시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동물쇼를 중단하고 싶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시민의 민원 제기와 동물보호단체의 쇼 중단 요구에 대해 어린이대공원과 서울시설공단, 서울시 동물보호과 등은 일단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애니스토리와의 계약기간이 2021년 9월까지여서 바로 쇼를 중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명백한 학대 행위로 볼 만한 요소가 발견되지 않는 것도 대공원이나 서울시 등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이유다. 어린이대공원은 일단 동물보호단체나 서울시 등의 의견을 업체에 전달해 쇼 내용을 개선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업체가 어린이대공원, 시설공단 등과 협의해 쇼를 중단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쇼에 동원되던 동물들의 처분과 이 업체 직원들의 실업 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19년 동안 위탁을 통해 동물쇼가 진행되도록 한 원죄를 지닌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동물해방물결은 “쇼를 위해 동물을 감금하는 것 자체가 학대”라며 서울시에 쇼 중단과 공연 동물의 여생을 책임질 것을 촉구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방류 등으로 다른 지자체들에 비해 동물복지에서 앞서가는 모습을 보여온 서울시는 시 소속 기관에서 동물학대 논란이 일어난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발빠르게 대응하려 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담당부서인 푸른도시국과 어린이대공원이 바로 회의를 열고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애니스토리 측과의 계약기간 등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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