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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잇단 '가족살해' 이대로 괜찮나…"가부장적 사고가 낳은 심각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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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자녀 살해 더욱 엄중하게 처벌해야"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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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뉴스1) 이상휼 기자 = 최근 1년새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빚에 시달린 가장이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이를 접한 시민들은 어린 자녀의 생명을 함부로 죽음으로 몰고가는 가장의 비정함에 슬픔과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전근대적이고 가부장적인 관념, '나 아니면 힘들어' 또는 '혼자 죽기 싫어서'라는 잘못된 관념이 이러한 비극을 불러온다면서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부터 사용하지 말고, 가장 또는 부모에 의한 살해 혹은 극단적 자녀 학대 등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권했다.

지난 20일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3명이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의 현장감식과 부검 등을 종합해 볼 때 가장 A씨(51)가 딸의 방에서 아내(48)와 딸(18)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씨는 2억대 빚에 시달렸고, 목공일을 하면서 수금이 되지 않자 경제난을 비관한 나머지 이같은 참혹한 결말에 도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23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가족간 합의하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갈등을 겪다가 우발적으로 A씨가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면서 "부인의 시신에 주저흔이나 방어흔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잠든 동안 A씨에게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눈치채고 깨어난 딸이 방어하다가 결국 살해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김 위원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한 가장이 가족을 상대로 한 범행은 주로 약이나 가스, 혹은 질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처럼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이 사건은 A씨의 단독적인 가족살해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제난에 시달린 가장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경우는 불과 2개월 전에도 양주시에서 일어나 충격을 줬다. 지난 3월18일 양주시 회천4동의 한 아파트 1층 자택에서 안모씨(40)가 아내(34)와 아들(7)을 살해하고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아내가 저항했으나 결국 살해하고 말았다. 자신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쳐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안씨도 경제난을 겪었다. 안씨가 범행을 저지른 날은 집주인에게 '이사 가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안씨는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씩을 냈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1년간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이 깎여 400만원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안씨는 지난달 30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장이 "죽을 마음이 없는 아내와 아이를 왜 살해했는가"라고 묻자 대답하지 못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동반자살이라는 용어 자체가 굉장히 잔혹하다. 딸도 독립적인 인격체인데 그 생명권을 아버지가 마음대로 결정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은 굉장히 가부장적이고 잘못됐다. 살인죄가 적용될 만큼 심각한 범죄"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족살인사건이 반복되자 엄단하자는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는 분위기다. 국제 아동 보건·보호 기구인 세이브더칠드런은 부모가 어린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행위는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참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인'의 경우 살인보다 엄중하게 처벌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는 '비속살인'에 대해서는 오히려 형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어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법부도 이러한 사회적 문제 의식에 공감, 대법원은 2016년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남편에게 징역 35년을 확정 지으며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30~40대 가장들은 "차라리 이혼하고 파산신청을 하는 방법이 낫지 않았겠느냐. 아내는 한부모가정 등 행정당국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활동하면 어떻게든 잘 살아나갔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daidaloz@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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