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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닻 올린 가습기살균제 공판…기업 전략은 '피해 입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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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입시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를 만든 기업들이 ‘제품과 인명피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 공소사실의 뿌리부터 흔들어 ‘증거인멸’부터 ‘업무상과실치사상’까지 혐의를 벗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박철 SK케미칼 부사장 측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안재천 판사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없앴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다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지난 16일 박 부사장과 SK케미칼·SK이노베이션(전 유공)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한 건도 병합해 심리했다.

박 부사장 측 변호인은 1994년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이 진행한 연구 보고서를 2013년7월 증거인멸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서울대 보고서 자체가 폐질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또 “보고서는 원래 없었는데 이후 입수해서 가지고 있었을뿐”이라며 “특별히 숨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증거를 인멸한 의도가 없었고 인멸 시도도 없었다는 얘기다.

박 부사장이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서울대 보고서에는 가습기메이트의 인체 유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온다. ‘6개월간 흡입 노출 실험 결과 가습기 메이트 원료 물질로 인한 백혈구 수치 감소’ ‘3개월, 6개월 노출 동물 부검해보니 신장 이상’ ‘표본이 3~4마리에 불과해 표본 부족, 동물 늘려 추가 실험 권유’ 등이 대표 사례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보고도 가습기살균제를 만들어서 판 SK케미칼이 주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냈다고 보고있다.

SK케미칼 측이 ‘보고서가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은 증거인멸뿐 아니라 업무상 과실치사상까지 모든 혐의를 염두에 둔 방어 전략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류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필러물산 측 재판에서 이미 감지됐다. 필러물산은 SK케미칼 하청업체로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해 납품했다. 필러물산 측은 지난 달 공판에서 가습기메이트 원료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에 대해 “유해성이 객관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아직 재판이 시작되지 않은 SK케미칼과 기소를 앞둔 애경산업 측도 향후 업무상 과실치사상 재판에서 같은 논리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향후 재판에서 독성 전문가, 의학 전문가, 업계 관계자를 줄줄이 증인으로 불러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제품 사용과 피해의 인과관계를 따질 수 있다.

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할 때 피해와 제품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전제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은 위험을 인지하고도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아서 결과를 만들었을 때 적용이 가능하다. 이미 형사처벌이 완료된 옥시 사건에서도 환경부의 발표만으로 포괄적으로 피해 인과관계를 인정받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할 수 있었다.

고의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를 없앤 혐의를 받는 고광현 전 애경 대표 측은 지난 22일 첫 증인신문 때 법무팀 직원에게 증거인멸 혐의를 떠미는 ‘꼬리 자르기’ 전략으로 재판에 임했다. 이날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피고인 양모 전 애경 상무와 당시 법무팀 직원은 모두 고 전 대표의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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