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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고] 한빛원전 사건의 교훈 / 석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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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석광훈
녹색연합 전문위원


최근 한빛(영광)원전 1호기 제어봉조작 규정 위반과 즉시 이루어졌어야 할 가동중단 조처가 12시간이나 지연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한국수력원자력과 규제당국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사건 경위에 대한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겠으나,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원자력계와 보수언론, 자유한국당은 강원도 산불마저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이라는 등 마치 ‘세상 만물이 원자력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식의 주장을 펴왔다. 이들은 최근 한국전력공사의 올해 상반기 적자 실적에 대해서도 “탈원전 정책 때문에 한전 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의 핵심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이다. 총 건설기간이 10여년에 이르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는 현재의 한전 경영실적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지난해와 올해 원전 이용률이 낮아진 이유는 한빛원전 등에서 원전사고 때 방사능 외부유출을 차단하는 최후의 보루인 격납용기철판의 부실시공과 부식, 원자로의 냉각 역할을 하는 증기발생기의 부실시공 문제가 확인되면서 장기간 가동중단됐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도 지난 20년간 다수의 원전에서 유사하게 경험한 사례로, 일부 원전은 설비보강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아예 조기폐쇄되기도 했다. 원전 이용률 저하는 안전규제 조처의 결과물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한빛원전의 가동중단은 탈원전 정책 때문이니 안전문제와 무관하게 즉시 재가동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편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의 수입을 걱정해야 했던 국내 여건에서 이 얼마나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발상인가.

문제는 이런 주장이 원자력 안전규제기관 종사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이 정지되어 있으니 빨리 재가동해야 한다’는 압박 여론이 지속되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칫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는 준사법기관에 해당하는 원자력 안전규제기관의 규제 건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들의 막무가내 행태로 인한 영향은 원전 안전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원자력계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이 3배 오른다’는 주장을 퍼뜨렸고, 전력시장 정책 준비가 미흡했던 정부·여당에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은 절대 없다’는 즉흥적인 대항 논리를 만들게 했다. 이는 탈원전 여부와 무관하게 국내 전력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고유가 대책으로 원전 가동 극대화와 전기요금 동결을 추진하다가 전력수요 폭증으로 2011년 9·15 정전 사태를 자초한 바 있다. 또한 정부·여당이 표방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전력과 정보통신의 융합에 있다는 측면에서도 전력시장이 혁신적인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요금 결정에서 일정한 자율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처럼 원가 변동과 무관하게 전기요금을 동결할 경우,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한전의 전후방 산업은 생존하기 어렵게 되고, 최악의 경우 국내 전력시설 부품마저 저가의 중국산으로 대체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보수 언론·야당의 ‘기승전 탈원전 정책 때리기’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정부도 이번 한빛원전 사건을 계기로 원안위의 규제 건전성 확립을 위한 근본적 조처를 취해 국민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하며, 협소한 탈원전 논란에 갇혀 전기요금을 동결하려는 조처를 중단하는 대신 대선 공약인 산업용 심야전기요금 정상화 등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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