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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그래도 진보정치] 사회가 소유하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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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는 주말마다 세입자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내건 요구가 인상적이다. 시위대는 민간임대주택 회사들을 국가나 베를린시 소유 기업으로 만들어 공공주택을 대폭 늘리자고 외친다. 주거 공유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운동이 벌어진 이유는 베를린도 다른 글로벌 대도시들처럼 2000년대 이후 집값이 배로 뛰었기 때문이다. 덩달아 임대료도 올라 서민들이 주거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베를린시가 공공주택을 민간 회사에 매각하는 바람에 서민들은 더욱더 임대업자의 횡포에 속수무책인 상태가 됐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진행된 주거 금융화의 결과이며, 여기에 세입자들이 내놓은 처방이 주거 공유화다.

민간 기업이나 개인의 사적 소유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통한 사회적 소유로 바꾼다? 너무 급진적으로 들리는가? 유토피아적 몽상인가? 지난 한 세대 동안은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의 풍향이 바뀌고 있다. 공유화는 베를린의 세입자 운동에서만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영국에서는 올해 들어 ‘코먼 웰스’라는 정책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코먼 웰스’란 공유 자산 혹은 공동의 부를 뜻한다. 코먼 웰스 연구소는 이러한 공동 소유 정신에 따라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사회적 소유 형태를 탐색한다. 노동자와 소비자가 운영에 참여하는 민주적 공공부문의 확장, 노동자 협동조합 기업의 확대, 디지털 공간의 비물질 생산에서 비롯된 공유(코먼스) 개념의 확산 등이 그러한 방향이다.

이는 제러미 코빈 대표가 이끄는 영국 노동당의 최근 지향과 일치한다. 한데 이런 지향에 대한 영국 좌파의 관심이 생각보다 더 광범한 것 같다. 코빈보다는 온건한 입장인 전 대표 에드워드 밀리밴드가 코먼 웰스 연구소의 이사를 맡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런 동향은 머나먼 유럽의 이야기일 뿐인가? 아니다. 저들이나 우리나 모두 신자유주의 시대를 겪었고, 지금은 동일하게 그 말기적 상황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 저들이 꺼내든 소유 구조 개혁 비전이 우리와 동떨어진 해법일 수는 없다.

실은 신자유주의 자체가 그 나름의 소유 구조 개혁으로 시작됐다. 신자유주의는 어느 나라에서나 ‘민영화’(사유화)로 첫걸음을 뗐다. 즉 공공부문과 다양한 공유 자산을 사적 소유물로 만들며 출발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든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정반대 방향에서 소유권 문제에 손을 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한국 사회의 여러 쟁점 이면에도 사회적 소유라는 대안의 필요성이 잠복해 있다. 가령 대우조선을 보자. 대우조선은 산업은행의 금융논리 중심 관리 아래 놓이거나 재벌 기업인 현대중공업에 인수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가? 조선산업 전문가와 노동자, 유관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사회적 기구를 신설해 중장기 산업정책에 따라 운영할 수는 없는가?

플랫폼택시 신설을 둘러싼 격렬한 충돌은 어떤가? 정말 우리에게는 택시업체 자본가의 낡은 관행을 봐주든가, 아니면 정보통신 대기업한테 새로운 돈벌이 수단을 만들어주는 선택지밖에는 없는가? 공공 당국이 구축하고 택시 운전자 협동조합과 소비자가 공동 운영하는 플랫폼은 생각해볼 수 없는가?

버스도 마찬가지다. 사기업이나 준공영 체제가 문제라면, 완전 공영 체제를 수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공기업을 새로 설립해 나머지 업체들이 이 공기업의 표준에 따르도록 만드는 방안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은가?

이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사회적 소유라는 대안을 대입해 신선한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쟁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다만 우리 안의 검열 기제가 이성과 상상력의 작동을 막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베를린 시민들처럼 이 장벽을 단호히 허물 때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사회적 소유면 왜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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