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특파원 칼럼] 진짜 트럼프표 외교는 북한이다 / 황준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19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한 한미의회외교포럼 소속 여야 의원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공화당·민주당 의원들, 싱크탱크 관계자 등을 만나 북-미 협상에 관해 의견을 나눈 이들이 기자들에게 한 말은 “걱정된다” “마음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었다. 2월 말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 행정부가 북한에 좌절했고, 이후 조야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는 기류라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 뒤 워싱턴에서 북한 이슈가 뒷전으로 밀려난 점은 확연하게 느껴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 대외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고, 국내적으로는 ‘러시아 스캔들’ 관련 공세 방어와 경제 호황 자랑, 이민 정책 드라이브 등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진작에 내년 11월 대선에 가 있다. 올해 트럼프의 트위터에서 ‘북한’ 언급은 2월 하노이 정상회담 때까지 월평균 8.5개였지만, 그 뒤 월평균 3.3건으로 줄었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확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나마 북한이 트럼프나 미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이달 초 두 차례의 발사체 발사와 미국의 북 화물선 압류 발표 때였다.

북-미 냉담 기간이 길어지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비판하며 적극적 대북정책을 펴온 트럼프마저 전임자들의 길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대외정책 가운데 북한이야말로 ‘트럼프표’ 의제다. 이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은 2015년 맺은 이란 핵협정 탈퇴와 이란 정권 교체 추구라는, ‘오바마 지우기’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미국이 오랫동안 붙들어온 중국과의 패권 다툼의 트럼프 버전이다. 베네수엘라 정권 교체 시도 또한, 현 마두로 정권을 쿠바의 앞잡이로 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2015년의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흔드는 작업과 연관돼 있다.

그런데 북한 문제는 다르다. 트럼프는 대선 때 “김정은과 햄버거 회담을 하겠다”고 공언했고, 한동안 “화염과 분노”로 벼른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내민 손을 붙잡아 미 대통령 최초로 북한 최고지도자와, 그것도 두번이나 핵 담판을 벌였다. 6자회담 틀 안에 머물며 사실상 북한을 방치해온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는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 대화의 새 장을 열었고 그 결과 한반도 긴장 수위를 현저하게 끌어내렸다. 이란에 “공식적인 종말”을 위협하는 트럼프를 두고 “북한에 쓰던 플레이북(전술)을 쓰고 있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대북 협상은 트럼프의 대표적 외교 모델로 인식된다.

한겨레

문제는 대화에 이은 정체 국면이다. 이 교착이 길어지면 트럼프도 대북 정책을 ‘성공’이라고 주장하기 어렵다. 그가 주장하는 “핵·미사일 실험 중단” 성과는 북한이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이는 순간 무너지는 취약한 구조다.

트럼프가 북한,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등의 사안에서 모두 일방적으로 승리하는 게 가능할까?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의 프레드 켐프 회장은 트럼프를 ‘저글링 사령관’이라고 표현하면서 “이 중 하나라도 성공하면 큰 승리이지만 공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해당 지역과 미국의 신뢰도에 오래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성공을 원한다면 북한을 ‘상황 관리 대상’에서 ‘우선협상 대상’으로 다시 올렸으면 한다. 트럼프가 독창적으로 주도해온 대북 외교야말로 그가 움직일 공간이 넓기 때문이다.

jaybee@hani.co.kr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