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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의 '와이, 와인(Why, wine)']<29>닳아버린 시간을 되살리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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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맛보는 와인⑤와인컨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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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 기자

"느낌을 말해봐요. 틀린 답이란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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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인컨트리 화면 캡쳐.


소믈리에가 와이너리를 방문한 레베카 일행에게 와인을 따라준 뒤 말한다. 이야 말로 틀린 말이다. 애비가 말한 '풋사과, 레몬'은 맞고 레베카가 말한 '통조림 복숭아'는 분명 틀리다. 일반인이 와인을 마시고도 뭔가를 말하기 주저하는 것도 그래서다. 그래, 그럴때는 레베카처럼 포도 냄새가 난다고 말하자. 포도로 만든 와인이니 레드와인이든 화이트와인이든 100% 정답이다.

영화 와인컨트리는 레베카의 50살 생일을 맞아 6명의 친구들이 와인컨트리(Wine Country)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로 주말여행을 떠나면서 시작한다. 6명의 배우 중 하나인 레이첼 드레치가 50번째 생일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나파밸리에서 보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도 에어비앤비로 빌린 집은 뒷문만 열고 나가면 포도밭이 끝이 없이 펼쳐져 있고, 가는 곳 어디서든 와인이 넘쳐난다.

와인 애호가라면 이 영화에 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와인에 담긴 심오한 철학따위는 안 나온다.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와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중년 아줌마들은 와인잔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지만 깊이 들어가봐야 "카버네 소비뇽이 나파밸리의 왕이라면 샤르노네는 여왕"이란 대사 정도가 전부다. 그런 설명보다는 "와인을 마시는 중간에는 물을 많이 마셔요, 그래야 숙취 예방에 좋아요" 같은 말이 더 환영을 받는다.

반면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와인을 그저 좋아했던 이들이라면 열광할 수도 있다. 중년의 그녀들은 어떤 설명도 귀담아 듣지 않고 "해장술이나 한 잔 하자"며 아침부터 맛깔나게 와인잔을 부딪힌다.

유기농 와인이라면 뭔가 좋은 평가를 내려야 할 같다는 고정관념에서도 해방시켜 준다. 유기농 와인이라 잔 바닥에 많이 보이는 침전물에 대해 '와인 다이아몬드'라는 와이너리의 설명이 나오기 전에 '와인쓰레기?'라는 말도 당당히 할 수 있다. 짜여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라면 '엄선된 카버네 소비뇽'이라도 원샷으로 마무리한다.

이들은 20대 때 시카고 피자가게에서 함께 일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그러나 서로의 삶은 너무나 다르기에 저마다의 고민은 나이만큼 쌓여있다. 애비는 회사에서 정리됐고, 레베카는 허리가 고장나 여행에서도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다. 캐서린은 주말 여행을 즐기기 힘들 정도로 일 중독이 됐고, 나오미는 유방암 검사결과를 차마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행 중 타로카드 점술가는 이들에게 "오랜 세월 함께 했다지만 비밀이 너무 많아요. 역동적이고 보석같은 시간이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닳아버렸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상황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이들의 사이를 메워주고, 보석같은 시간을 되살려 주는 역할을 하는게 바로 와인이다.

와인컨트리에서 와인은 그런 존재다. 연구해야 하고 배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친구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벽을 무너트리는데 도움이 되는 일종의 마법의 주문이다.

안상미 기자 smahn1@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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