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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탁류청론] 中企 상속공제 요건 완화, 조세정의 부합하는지 먼저 따져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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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콜베르는 프랑스 루이 14세 시기의 중상주의자로서 재정총감을 역임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국민개세주의를 주장하며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도록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이 바람직한 조세라는 명언을 남겼다. 17세기의 인물인 콜베르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소득공제범위 축소과정에서 정책당국자가 그를 소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세제개편논의가 이루어질 때마다 거위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콜베르보다 거위가 더 유명한 것 같기도 하다.


콜베르는 왜 굳이 거위의 비명과 깃털을 예로 들면서 국민개세주의와 바람직한 조세를 설명하려 했을까. 17세기 프랑스는 잦은 전쟁 및 왕실과 귀족의 사치로 인해 재정파탄에 빠져 있었음에도 상류계급인 귀족은 온갖 구실과 명목으로 면세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이에 콜베르는 재정총감으로서 재정조달을 목적으로 국민개세주의를 내세워 귀족들의 면세혜택을 폐지했다. 국민개세주의는 17세기 프랑스의 고소득자와 대자산가들에 대한 과세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콜베르의 '거위의 깃털 뽑기'는 귀족계층의 조세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시야를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의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납세의 의무를 진다(제38조)"고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에서는 "정의의 이념에 따라 평등한 것은 평등하게 불평등한 것은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이 조세정의(租稅正義)라고 설명하고 있다(헌재1989.7.21. 89헌마38).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정의로운 조세는 소득과 재산의 크기에 따라 조세부담을 달리해야 한다는 수직적 공평에 부합하는 조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헌법재판소는 또한 재정수입 확보 이외에 국민경제적ㆍ재정정책적ㆍ사회정책적 목적달성을 위해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납세자 간의 차별취급도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헌재2002.8. 2.9. 2001헌가24).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대해 조세우대를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등에 대한 가업상속공제제도는 합리성을 구비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차별적 조세우대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기업은 당초 중소기업에서 현재 연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 확대됐으며, 가업상속공제한도 금액 또한 최초 1억원에서 최대 500억원으로 확대됐다. 최근에는 매출액 기준과 상속공제한도금액을 각각 1조원과 1000억원까지 인상하자는 요구도 제기되고 있으며, 적용 요건이 까다롭다는 이유로 상속인의 대표이사 재직기준과 근로자 수 유지기준 및 업종변경 제한기준 등 사후관리규정의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도 증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특례제한법에서 중소기업의 설립과 성장 및 자금조달 단계 등에 대해 연간 3조~4조원 규모의 조세우대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경우 최근 10여년간 지속적인 증세가 이루어지면서 소득세 부담이 약 2.7배 정도 증가했다.


요컨대 현행 가업상속공제제도는 헌법 규정과 헌재의 입장 및 각 경제주체의 조세부담 수준에 맞춰 정의에 부합하도록 개편돼야 한다. 미국의 대부호이자 철강왕인 카네기는 거대한 부의 축적은 사회가 생산한 것을 개인이 소유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므로 이를 국가에 환원하는 것은 공평한 것이며, 재산상속권을 제한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기회균등과 민주주의의 이상을 부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의로운 조세는 무엇인가. 정의로운 조세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가업상속과세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가업상속공제의 특혜가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호림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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