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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시시비비] 막말로 막 나가는 '막말 정치' 막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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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갈 데까지 간 듯하다. 요즘 우리 정치판에 난무하는 '막말 퍼레이드'를 보며 든 생각이다.


지난 3월 바른미래당의 이언주 의원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자기 당 손학규 대표를 두고 "찌질하다"고 했다. 찌질하다고? 이건 싸우려 들지 않는 이상 보통사람들 간에도 대놓고 하지는 않는 말 아닌가? 지난 4월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도둑놈들에게 국회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당 우상호 의원은 라디오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좀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도둑놈은 누구고, 그들을 뽑은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미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 나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대구 장외집회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겨냥해 '문빠' '달X'이라 일렀다. 같은 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지난 16일 TV에 나와 문 대통령이 자기 아픔에 둔감한 '한센병' 환자에 빗대 거센 역풍을 맞았다. 얼른 생각나는 여당과 제1 야당 의원들의 막말만 꼽아 봐도 이 정도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황교안 한국당 대표를 사이코패스라 일컫거나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이 20일 문 대통령을 '박쥐 정치인'이라 딱지 붙이고,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이 지난 19일 소셜 미디어에서 민 대변인에 대해 '가래침 감성'이라 비난한 것 등까지 꼽자면 우리 정치판은 가히 '막말 전성시대'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


이해는 간다. 자극적인 말은 명쾌하고 후련하다. 적을 선명하게 규정하고 악으로 몰아갈수록 호소력이 커져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데 딱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는 데도 유효하다. 비상(非常)한 것에 주목하는 언론의 속성상 합리적 비판보다는 막무가내일지언정 강력한 표현이 뉴스거리가 된다. 형편이 이러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잊히느니 욕 먹는 게 낫다'는 심사에서 일단 막말을 내지를 수밖에.


그러나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 정치는 국민을 상대로 지지를 얻기 위한 경쟁이다. 상대 정파는 청산하고, 일소해야 하는 적이 아니다. 당연히 이를 없애야 자기가 사는 게 아니다. 정치의 사전적 풀이를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란 정의 뒤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


여기 어디에도 상대 정파를 깎아내리다 못해 짓밟고 모욕하는 것이 정치의 일부 또는 과정이라 여길 구석은 없다. 정권 획득을 위한 정쟁(政爭)은 언제 어디서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국민을 위한 비전과 그 실천 계획을 가지고 경쟁하는 데서 그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오늘, 우리에게 '정치'는 없다. 국회의원이란 정치인은 있을지 몰라도, 국민을 도외시한 저열한 싸움이 정치를 대신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들의 유머를 정리한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밥 돌 지음ㆍ아테네)'란 책에 16대 링컨 대통령 이야기가 나온다. 평생 라이벌이었던 스티븐 더글러스가 "링컨은 두 얼굴의 사나이"라 공격했다. 우리 정치판 같으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조상'을 들먹이고 온갖 인신공격이 쏟아졌을 터다. 링컨은 달랐다. 그는 "제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응수해 판정승을 거뒀다. 150여년 전 노예해방 문제로 내전을 벌였던 극단적 시대에도 유머가 힘을 발휘한 사례다.


막말은 막말을 낳는다. 국민 수준을 무시하는 망언(妄言), 요언(妖言), 극언(極言) 대신 합당한 직언(直言), 건전한 고언(苦言)이 나오려면 정치는 전쟁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유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김성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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