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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관승의 리더의 여행가방] 미니정보: 베를린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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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은 한반도의 휴전선과 더불어 냉전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지만 불과 30년전까지만 하여도 한 세상의 막다른 골목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1989년 11월 9일 문이 열리기 전까지 정확하게 28년 2개월, 그리고 27일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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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징에서 통일의 상징으로, 그리고 지금은 혁신의 랜드마크가 된 브란덴부르크 문./사진=손관승



시대의 괴물인 베를린 장벽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 8월 13일 동독정권에 의해 갑자기 세워졌다. 장벽 건설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배경이 있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는 동독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대량 탈주 사태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동서독의 경제적 차이에다 동독 공산당 정권이 비밀경찰에 의한 강권통치를 계속하자 이에 실망한 시민들이 서베를린 지역으로 넘어갔다. 이주민 수가 300만명에 이르렀다. 국토와 인구가 작은 동독으로서는 국가적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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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마침내 열린 베를린장벽./사진=위키피디아



이 장벽의 건설로 서베를린은 육지 속의 섬으로 변했다. 미국의 J.F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서베를린을 방문해 이곳을 지키겠다는 연설을 하였고, 1987년 6월 12일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에게 장벽해체를 촉구하는 유명한 연설을 남긴다.

"Mr. 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 [" (미스터 고르바초프, 문을 여시오. 미스터 고르바초프, 장벽을 허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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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12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연설하는 장면./사진=위키피디아



이 장벽을 넘다가 동독 국경경비대에 의해 사살된 사람은 136명에서 245명 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통일 뒤 베를린 장벽 대부분은 허문 뒤 해체되었고, 일부 구간만 역사적 자료를 위해 보존되고 있다.

한편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다음 해인 1990년 봄, 21개국가에서 온 100여명의 예술가들은 슈프레 강가의 장벽 가운데 동베를린 쪽 장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지금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라 명명된 곳이다. 약 1.3km에 이르는 이곳은 베를린 관광 1번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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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에 그래피티 예술로 장식한 유명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작품 중 하나. 동독의 트라비 자동차가 냉전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다./사진=손관승



손관승·언론사 CEO출신 저술가(ceonoma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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