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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더럽고 위험한 사람들’ 영화 속 편견이 중국동포 차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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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3주기-한국에도 혐오범죄 있다]④문화콘텐츠 속의 혐오

경향신문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 납치된 여성을 구출하러 서울 대림동 한 식당을 찾아간 경찰대 학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을 중국동포들이 위협하고 있다. 영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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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년경찰’이 혐오 조장”

중국동포들, 손배청구소송

“대부분이 조심스럽게 살고

불법체류자도 극소수 불과”

1심, 혐오 아니라 판단했지만

영화 관객 대상으로 설문 결과

중국동포 만난 경험 없는데도

‘범죄 증가’ 인식 확대에 영향

중국동포 등장 영화 계속 늘고

장애인·여성들에 대한 혐오

문화콘텐츠 통해 진화·확산


경찰대 학생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이 탄 택시가 서울 대림역 12번 출구 옆 골목길로 들어간다. 이들은 중국동포에게 납치된 여성을 구하러 가는 길이다. 차창에 휘황찬란한 중국어 간판들이 반사되며 지나간다. 억양이 센 중국어와 음습한 음악이 함께 흘러나온다. 기준과 희열의 표정은 오지 못할 데를 왔다는 듯 사뭇 심각하다.

“아이씨. 한국에 이런 데가 있었어?”(희열) “야 간판 봐. 완전 중국이야. 처음 본다.”(기준)

길목에 선 건장한 남성들이 위협적으로 인사를 한다. 이때 택시기사의 대사가 나온다. “학생들, 이 동네 조선족들만 사는데 밤에 칼부림도 많이 나요. 여권 없는 범죄자들도 많아서 경찰도 잘 안 들어와요. 웬만해선 길거리 다니지 마세요.” 565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영화 <청년경찰>의 한 장면이다.

2017년 12월 중국동포 61명이 이 영화의 제작사인 무비락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영화가 중국동포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고 혐오를 조장해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이었다. 한국에서 혐오 피해 당사자가 문화콘텐츠에 대해 혐오표현이라며 소송을 내 법원의 판단을 구한 사례는 이 사건이 처음이다. 지난해 9월 1심 재판부는 중국동포들 패소 판결을 내렸다.

■ 중국동포는 위험하다?

중국동포들은 왜 소송까지 냈을까. 원고로 참여한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이사장은 “영화만 보면 ‘대림동이 이렇게 위험한 곳이구나. 중국동포들은 위험한 사람들만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대림동은 중국동포들이 많이 살아 위험하다는 막연한 생각에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줄면서 경제적 피해도 봤다.

함께 원고로 참여한 김용선 KC동반성장기획단 이사장은 “한국에 가족 등 기반이 마련돼 있는 동포가 범죄를 저질러 강제추방되면 집안에 큰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대부분의 중국동포들은 정말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며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중요해도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약소공동체에 상처를 주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은 폭력”이라고 했다.

<청년경찰> 속 택시기사의 대사도 사실과 다르다고 중국동포들은 말한다. 실제 중국동포들은 별도 비자로 입국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는 소수다. 범죄율은 외국인이 내국인의 절반 수준이다.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 박남천 부장판사는 <청년경찰>이 혐오표현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심 판결문 전체 29쪽 중 판사의 판단 부분은 단 3쪽이다.

박 부장판사는 <청년경찰>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제작됐고,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도 혐오스러운 중국동포 집단에 관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중국동포 배역보다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가 더 나쁘게 묘사되는 점을 박 부장판사는 예로 들었다. 관객이 영화로 중국동포에게 혐오를 가지게 될지 여부는 관객마다 다르며, 영화 속 범죄자 중국동포들과 일반 중국동포를 연결시킬 묘사도 없다고 했다.

<청년경찰>이 국제인권기준인 유엔(UN)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협약’ 위반이라는 주장도 박 부장판사는 배척했다. 한국은 협약을 1978년 비준했다. 협약은 법원을 통해 인종차별행위로부터 만인을 보호하고 구제해야 한다고 규정하지만, 한국 법원이 이 협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판결은 매우 드물다. 박 부장판사는 협약을 한국이 비준했어도 곧바로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법원이 손을 놓는 사이 혐오의 피해자들이 혐오를 당했다고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 “영화가 혐오에 영향 미쳐”

1심 판결 이후에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를 담은 문화콘텐츠가 수용자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이 나왔다. 국민대 한희정·조인숙 교수, 한신대 신정아 교수의 ‘조선족에 대한 의사사회 상호작용과 유사현실 인식 연구’ 논문은 첫 실증 분석이다. 연구진은 <청년경찰>을 시청한 서울과 경기지역 고등학생 3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중국동포 관련 미디어에 많이 노출될수록 중국동포 관련 범죄가 증가했다는 인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대다수는 중국동포와의 대인관계 경험이 없었다. 영화 속 세계가 현실과 유사하다는 인식도 범죄 증가 인식과 밀접하게 이어졌다. 연구진은 “조선족을 문제적 인물로 낙인찍는 콘텐츠가 많고, 이에 많이 노출된 이용자일수록 확고한 주류적 방향을 갖고 조선족에 대한 태도와 가치를 배양한다”고 분석했다.

인식은 정책 결정으로까지 이어진다. 설문 분석 결과, 중국동포가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고 인식할수록 중국동포를 위한 정책 지원 필요성도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정아 교수는 “미디어에서 조선족을 대하는 방식은 편견의 공장”이라며 “(문화콘텐츠의) 조선족에 대한 캐릭터 재현 방식이 차별을 조장하고 정작 조선족들의 삶이나 생각, 세대 문화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신 교수는 “콘텐츠 안에서 한국인과 (중국동포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해야 한다”며 “검증되지 않고 과장된 부분에 대해서 모니터링을 통해 막아야 하는데 인종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제재 방안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 끝나지 않는 혐오

중국동포가 등장하는 영화·드라마 등 문화콘텐츠는 최근 크게 늘었다. 영화만 해도 <범죄도시> <차이나타운> <황해> <신세계> 등이 있다. 중국동포를 다루는 방식도 점점 진화한다. 이전까지는 주로 남성 중국동포를 범죄자로 그리는 방식이었다면 영화 <미씽>과 <우상>, 드라마 <미스트리스> <빅 포레스트>에는 여성 중국동포가 등장한다. 여성 중국동포들은 극중 가장 불쌍한 캐릭터로 등장했다가 구제받지 못한 채 추방된다.

<청년경찰> 소송은 항소심에서 심리 중이다. 중국동포들은 항소심에서 패소하더라도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했다. 이들은 말했다. “계란으로 바윗돌 치기죠. 소송에서 꼭 이기자는 것보다도 중국동포들이 영화에서 그린 것처럼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신 교수도 말했다. “소송에서 이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혐오는 문화의 문제잖아요. 이 소송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열리고 중국동포들의 인격과 문화가 존중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생기길 바라는 거죠.”

<시리즈 끝>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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