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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ILO 협약 비준 땐 전교조 합법화… ‘보충역 제도’ 수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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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협약 비준 착수 파장은 / 실업자·해고자도 노조 가입 가능 / 해직교사 조합원 둔 전교조 ‘숨통’ / “대체복무자에 현역병 선택권” / 손흥민, 군대 꼭 가야 하진 않아 / 비준 불발 땐 EU와 통상분쟁 / 재계 “단결권만 확대 땐 부작용” / 고용부 비준 강행에 강력 반발 / 여야 이견에 또 다른 갈등 ‘불씨’

세계일보

정부가 22일 비준 절차에 착수키로 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은 국내 노사관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수 있는 내용이 적잖다. 숱한 협상에도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섰던 이유다. 우선 단결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협약이 비준되면 실업자와 해고자 노조 가입의 길이 열린다. 강제노동 금지 조항을 담은 협약이 비준되면 국내 ‘보충역’ 제도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비준 절차를 밟기로 한 ILO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3가지다. 이 가운데 국내법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아 가장 첨예한 쟁점이 되는 것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ILO 핵심협약 제87호다.

제87호 협약은 기본적인 결사의 자유 원칙을 규정하고 자발적인 단체 설립과 가입, 설립된 단체의 자유로운 대표자 선출과 활동 등을 보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노동관계법은 제87호 협약에 어긋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조항이 많다. 특히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노동조합법 제2조는 제87호 협약에 저촉된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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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 여부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전교조는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뒀다는 이유로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받아 합법적 노조 지위를 잃은 상태다.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협약은 처벌의 위협에 따른 모든 형태의 비자발적인 노동을 금지한다.

제29호 협약과 상충한다는 지적을 받는 국내 제도는 사회복무요원을 포함한 보충역(대체복무) 제도다. 그러나 보충역 제도는 이 협약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얘기처럼 이 조항이 비준되면 군 복무 대신 체육요원으로 편입한 손흥민도 군대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경제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보충역 제도가) 협약 금지 사항에 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체복무를 하게 된 사람이 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보충역 판정을 받더라도) 본인이 원하면 현역병으로 갈 수 있는 선택권을 주면 협약을 충족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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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설명한 뒤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정부가 비준 대상에서 제외한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105호 협약은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제재, 경제 개발을 위한 노동 동원, 노동 규율 수단, 파업 참가자 제재, 인종·사회·민족·종교에 따른 차별 수단 등에 해당하는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이 장관은 “(제105호 협약을 비준하려면) 우리나라 법제의 징역형을 금고형으로 변경해야 한다”며 “전체 형벌 체계를 개편하는 문제와 맞물려 지금은 비준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국가보안법도 이 협약과 상충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정부가 제105호 협약을 비준 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로 ‘분단국가 상황’을 거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 입법 후 비준’ 입장이던 정부가 이날 비준 절차에 나선 것은 데드라인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다음달 10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기념총회를 지목해 우리나라의 핵심협약 비준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비준이 안 되면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EU와 통상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 장관은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EU와의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식 논평을 통해 단결권만 확대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정부가 시간에 쫓겨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하게 반영하지 못한 채 노사관계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노동계는 반겼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은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반겼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국회는 ILO 핵심협약 비준 동의안을 받는 즉시 동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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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가 22일 청와대 분수대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경실련, 참여연대 등이 참여했다.


◆ 한국당 “경영계 방어권 보장 우선돼야”

정부가 22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개의 비준 절차를 공식 발표하며 ‘공’을 국회로 넘겼지만 자유한국당은 ‘선 입법보완 후 비준’을 요구하며 고용노동부의 일방적인 비준 강행에 반발하고 나섰다.

고용부가 9월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동의안과 동시에 핵심협약에 관련한 법률 개정안도 함께 제출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야 간 공감도가 낮은 상황에서 또 다른 갈등의 폭탄을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노조의 결사 자유와 단결권 행사가 강화되는 만큼 경영계의 방어권도 보장하는 입법보완이 우선돼야 ILO 핵심협약 비준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은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진행하는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은 노조에 기울어진 노동환경을 만들어 기업의 경영환경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며 “경제계에서 요구하는 대체근로 허용이나 부당노동행위 시 처벌 규정 폐지 등의 입법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노사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공약달성을 위해 ILO 협약비준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추진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국회 환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한정애 의원은 “야당이 법률 개정안과 비준동의안의 상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 한국 정부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준을 하겠다고 알리는 의미도 있다. 경사노위 안을 바탕으로 정부가 노사의 의견을 수렴해서 정부안을 내면 그때 국회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준비하는 비준동의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관련법 개정은 국회 환노위에서 담당하게 된다.

세종=이천종 기자, 이우중·이창훈·최형창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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