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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던진 화두 ‘진보의 미래’, 오늘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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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거 10주기

복지예산 더 늘리지 못해 아쉬워해

문 대통령 확장 재정도 보수쪽 반대

“노무현 정신은 약자와 함께 가는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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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비판에 시달렸지만, 그가 꿈꾼 건 ‘현실에 발 딛고 선 진보주의자’였다. 마지막까지 매달렸던 주제도 ‘미래의 진보주의’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10년, 그가 꿈꾸던 ‘진보’는 얼마나 우리의 현실이 됐을까. 그는 2008년 대통령직에서 퇴임한 뒤 재임 시절을 성찰하며 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집필한 미완성 원고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함께 토론했던 학자들 손을 거쳐 <진보의 미래>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가 화두로 삼았던 핵심 의제들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짚어봤다.

■ 복지―“무식하게 했어야 하는데…”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 하고 위로 쫙 그어 버리고, ‘여기에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해서….”

노무현이 퇴임 뒤 가장 안타까워한 정책 분야는 ‘복지’였다. 그는 재임 기간 정부 총지출 가운데 사회복지 예산 비중을 2003년 20.2%에서 2007년 28.7%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그는 임기 동안 복지 지출을 더 늘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의 구상은 “우선 예산을 써서 국민 복지가 향상돼야 하고, 개인의 능력이 향상돼야 하고, 그것이 일자리와 결합되고, 뭐 이런 것”이란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미흡했다는 수준의 복지 확대조차 ‘성장은 뒷전이고 분배만 신경 쓴다’는 보수진영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며 확장재정 의지를 밝혔지만 ‘재정건전성이 우선’이라는 보수진영의 반격에 부닥쳤다. 자유한국당은 ‘남미 사례’를 줄기차게 인용하며 ‘복지망국론’을 설파한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는 “노무현 정신은 약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복지에 대한 강조로 나타났다. 노무현의 성찰을 곱씹어 과단성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노동―“우리가 진짜 무너져내린 그 핵심”

“정리해고를 거역할 방법이 없더라니까. 관료조직 전체에서 노동부가 조금 밀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데 노동부가 안 밀리면 어쩌겠어요?”

노무현 정부 5년은 노동계의 기대가 배반당한 시기이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된 정리해고는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 확산으로 이어졌다. 노무현도 이 점을 뼈아프게 생각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노동 유연화가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시대적 제약을 노 대통령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의 고민을 잘 알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반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하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김 이사장은 “유연화 논리가 약해진 지금은 10년 전보다 상황이 좋은 편이다. 표면상 비정규직 수는 줄고 있지만 공공 부문에 한정돼 민간 부문에 확산이 안 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관료주의―“그냥 앉아서 포획돼버렸다”

“어떻게 하면 관료주의를 조금이라도 해소시켜 열심히 일하게 하느냐, 그리고 일하는 방향을 바꾸게 하느냐, 그것이 중요하죠.”

노무현이 맞닥뜨린 또 하나의 어려움은 관료주의였다. 그래서 그는 “기온이 계절을 만들어낸다”고 했다. 관료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 ‘관료들에게 포위됐다’는 진보진영의 쓴소리를 들었다. 이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게 문 대통령이었다.

최근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눈 대화에서도 드러나듯 관료주의는 개혁을 표방하는 정부가 넘어야 할 여전한 걸림돌이다. 이병천 교수는 “관료주의를 돌파하려면 철학과 실력, 전문성을 갖춘 개혁인사가 대통령 옆에 풍부하게 포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 주변엔 이런 인사들이 잘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시민―“진보의 역사를 밀고 가는 주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노무현의 ‘유훈이자 묘비명’인 이 말은 <진보의 미래>를 관통하는 ‘최후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세상을 뜨기 전 그는 관료와 직업 정치인이 주도하는 보수적 주류질서의 극복 가능성을 ‘시민’에게서 찾았다. 그가 말한 시민은 국가의 통치 대상으로 선거 때만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수동적 국민과 구별되는 ‘일상 속에서 성찰하고 행동하는’ 능동적 정치주체를 의미했다. 그 시민은 10년 뒤 광화문광장에 모여 ‘이게 나라냐’고 외친 촛불 시민으로 현실화했다.

실제 지난 10년 새로운 시민의 힘은 한동안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하던 대통령을 끌어내려 감옥에 보낼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시민의 성장이 지닌 양면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최근 나타난 시민의 힘은 지속성과 견고함을 지닌다기보다 특정 이슈가 발생할 때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대중운동의 형태로 분출했다가 이슈가 소멸하면 빠르게 사그라드는 게 특징”이라며 “노 전 대통령 말대로 이 에너지를 조직화·일상화하기 위한 전략과 플랫폼을 마련하는 게 우리의 숙제”라고 짚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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