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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굳는 희귀난치병 청년 "너만 아픈 게 아냐" 희망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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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때 폼페병 확진, 투병 중인 23세 이승철씨

"어린 희귀병 환우, 피해의식 생기지만 극복해야"

병세 조금씩 나빠지지만 희망 나누려 사회생활 도전

"중학교 2학년부터 뛰는 게 힘들어졌어요. 걸음걸이가 불편해졌고 계단 오르기도 어려웠죠. 개인 병원에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아 반년을 치료했지만, 차도는 없었어요. 의사도, 가족도, 저도 단순한 측만 증상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의사 선생님 권유로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1년간 진료받은 뒤 중3때 '폼페병' 확진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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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이 점차 손상되는 희귀질환인 폼페병 환자인 이승철씨는 현재 다음세대재단에서 스타터로 근무 중이다. [사진 사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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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 이승철씨는 폼페병을 앓고 있다. 폼페병은 루게릭병처럼 근육이 쇠약해지는 희귀 질환이다. 당분을 분해하는 효소가 작동하지 않아 당이 근육에 쌓이면서 근육을 손상시킨다. 초기엔 걷고 움직일 수 있지만, 점점 거동이 어려워진다. 전 세계 5만명 중 1명꼴이 앓는 병으로, 한국에선 약 50명이 있다.

5월 23일은 희귀질환 극복의 날이다. 상당수 희귀질환 환자는 차별적 시선에 사회 진출을 꺼리고 병을 알리지 않는다. 특히 청소년기 환자는 편견 어린 한 마디에도 쉽게 마음을 닫는다. 이씨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지만, 일찌감치 극복했다. 현재 그는 2주에 한 번씩 주사 치료를 하며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 중이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이씨는 뛰거나 빨리 걷는 것 외엔 아직은 일상 생활에 큰 무리는 없다. 지난 3월부터는 민간재단인 다음세대재단에서 스타터(채용 목적을 배제한 교육형 수련생)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장충동 다음세대재단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2월 주치의로부터 희귀난치병 청년 환우를 대상으로 하는 스타터십 채용 공고를 들었다.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의 CSR(기업 사회 책임) 활동 중 하나로 희귀질환 청년 환우의 사회 활동 도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씨는 지원 과정을 거친 후 합격해 국내 첫 주인공이 됐다.

그의 주 업무는 사노피와 다음세대재단이 함께 꾸리는 '초록산타 상상학교'(아동·청소년기 희귀질환 환우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활동을 돕는 것이다. 이씨는 어린 환우들에게 자신 역시 화나고 두려웠던 마음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어렸을 때 확진을 받은 많은 환우는 '왜 나만 아플까, 저 사람 혹시 내가 병에 걸려서 쳐다보는 게 아닐까?' 하는 피해의식이 생긴다"며 "이를 빨리 극복할수록 행복해진다"고 강조했다.

이씨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병 때문에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는 자괴감이었다. 중·고등학교 땐 느린 걸음이 다른 학생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일찍 학교에 갔다. 21살, 병 때문에 못 간 대학에 들어가려 다닌 재수학원도 늘 일찍 도착해 일찍 나왔다. 비 오는 날 학원생이 몰릴 시간을 피해 미끄러운 계단을 빨리 내려가다 넘어진 적도 있었다. 머리를 찧어 열한 바늘을 꿰맬 정도로 큰 사고였다. 그는 "지금은 도움이 필요할 땐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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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터로 활동 중인 다음세대재단에서 어린 희귀질환 환자를 위한 '초록산타 상상학교' 프로그램 내용을 설명 중인 이승철씨. [사진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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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가 마음의 벽을 허물게 된 건 중3 때 만난 두 친구 덕이 컸다. 둘은 이씨의 병을 개의치 않고 함께 놀자고 했다. 빨리 걷지 못하는 이씨를 업어주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이 제 친구들에게 아픈 승철이랑 왜 어울리냐고 물었대요. 친구는 '아프든 아니든 똑같은 사람 아니야? 무슨 상관이야?'라고 답했다는 거예요.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무조건적인 내 편이 생겼다고 느꼈죠."

이씨가 가장 바라는 건 많은 사람이 장애인, 희귀난치병 환우를 같은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도와주려는 태도는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런 인식이 생기려면 환우 역시 두려움을 이기고 사회로 나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병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마음을 다해 삶을 사랑하며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면, 좋은 소식은 올 것이라 생각해요. 나중엔 인터넷 방송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폼페병과 제 삶을 알리면 다른 희귀병 환우에게 큰 힘이 될 테니까요."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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