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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총장 된 시각장애인 "안보이니 한눈팔 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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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총신대 7대 총장 "역경 이겨낸 원동력은 인내…

기부금 많이 모아 뒷바라지하고 공정, 투명, 소통으로 대학 이끌 것"

전국 대학 사상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총장이 탄생했다. 총신대는 최근 이재서(66) 명예교수를 제7대 총장으로 선출했다. 오는 25일 4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이 총장은 어릴 적 앓은 열병의 후유증으로 14세 때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고학으로 총신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해 사회복지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입지전적 인물. 총신대는 전국 1만2000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이 설립한 학교다.

22일 낮 기자들과 만난 이 총장은 "저 개인의 영광보다는 장애인들에게 '우리도 대학 총장을 배출했다'는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공정, 투명, 소통으로 대학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제게 실명(失明)은 축복이었다"고 말하지만 처음 실명했을 땐 절망했다. 전남 순천 산골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때 5㎞ 등하굣길 풍경, 만났던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라디오도 없던 시절 보지 못하는 하루는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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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최초로 총신대 총장에 선출된 이재서 명예교수가 장미꽃을 만지고 있다. 그는 “고통과 역경을 견뎌낸 힘은 인내였다”며 “대학 구성원과 장애인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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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맹학교로 진학했을 때는 행복했다. 다른 학생들도 똑같이 장애가 있었기 때문. 맹학교 재학 시절 1973년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집회에 참석한 것이 신앙을 갖는 계기가 됐다. '큰 동상을 개미가 아무리 기어다녀도 전체 동상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이 아무리 연구를 해도 우주의 모든 비밀을 풀 수 없다'는 말에 '알고 믿자'가 신조였던 청년은 '일단 믿자'며 항복했다. 총신대 재학 중이던 1979년 장애인과 소외된 이웃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 '밀알선교단'(현재 세계밀알연합)을 만들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세계밀알연합은 세계 21개국에 100여 지부를 두고 있다.

그는 역경을 이겨온 삶의 원동력으로 '인내'를 꼽았다. "제게 상담 요청하는 분이 많습니다. 제가 늘 드리는 말씀은 '지금의 고통 역경이 끝이 아니다. 우리가 전혀 몰랐고 감지하지 못하는 미래가 있다. 참고 기다려 보자'입니다. 제 인생이 그랬고요."

선거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최근 수년간 총신대는 내홍을 겪었다. 지난 2월 정년퇴임한 그에게 주변에선 선거 출마를 권유했다. 처음엔 "놀리지 말라"고 했지만 한 달쯤 기도 드리자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전체 후보는 11명. 추천위가 네 차례에 걸쳐 2명으로 압축했고, 지난 4월 13일 이사회에선 참석 이사 10명 전원의 찬성으로 선출됐다. 이 총장은 "학교 경영 원칙은 '원상 복귀'"라며 "학생은 공부, 교직원은 맡은 업무, 교수는 연구와 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총장인 저는 기부금을 많이 모아 뒷바라지하겠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선천성 시각장애인에 비하면 저는 열네 살까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늘색, 꽃 모양, 노을빛 같은 걸 기억한다"며 "그 기억이 삶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걸리는 것, 빚진 것 없이 자유로우니 망설임 없이 총장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저는 보이지 않으니 적어도 한눈팔 일은 없다"며 웃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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