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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하늘에 '외벽 날벼락'… 머리 위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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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나흘새 잇따라 외벽 붕괴 사고

2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12층짜리 아파트. 6층부터 11층 사이 외벽에 회색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드라이비트(단열 외장재)가 붙어 있던 자리다. 토요일이던 지난 18일 넓이 120㎡, 무게 240㎏짜리 드라이비트가 주차된 차량 2대 위로 떨어졌다.

석고, 스티로폼, 유리섬유 등으로 만든 단열재인 드라이비트는 그간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머리 위 안전을 위협하는 '날벼락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3월 소방청에 전달한 건축물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16만5036곳 가운데 14%인 2만2782곳이 드라이비트를 마감재로 사용했다.

드라이비트 공법이 유행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단열재를 건물 벽 위에 고정하는 방식이어서 상대적으로 공사비가 싸고 공기(工期)가 짧다. 시공도 비교적 간단하다. 건물 외벽에 'ㄴ'자 모양 철제 지지대를 박은 후 여기에 공업용 접착제를 바른 단열재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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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노후화가 빨리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드라이비트가 비와 바람에 노출되면 '뿌리' 역할을 하는 철제 지지대가 녹슬게 된다. 강풍이 불면 철물이 부러지면서 드라이비트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비슷한 사고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드라이비트 마감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경험이 많지 않은 중소 업체들이 저렴한 자재를 사용해 드라이비트를 시공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고정용 철물이 비바람에 10년 이상 노출되면서 녹슬어 부러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고가 난 잠원동 아파트는 준공한 지 11년이 된 아파트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시공 과정에서 접착제를 충분히 바르지 않은 경우 그보다 더 일찍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했다. 2017년 경기 군포시에서는 지은 지 2년 된 7층짜리 다세대 주택 외벽에서 드라이비트가 무너져 차를 덮쳤다.

지난 21일 건물 외벽이 무너지면서 60대 미화원이 숨진 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 미술관 사고의 경우, 드라이비트 마감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사법과 건물 노후화가 겹쳐 생긴 사고라는 점은 비슷하다.

이 건물은 벽돌 외장 마감법으로 지어졌다. 콘크리트벽에 'ㄴ'자 모양의 철제 자재를 박고 여기에 벽돌을 올려 1차 고정하고, 모르타르(모래·시멘트를 섞은 접착제)를 발라 붙이는 방식으로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유행했다. 외관이 단정하면서도 공사비가 싸고 공기가 짧아 학교, 개인 주택 건축에 많이 쓰였다.

전문가들은 시공한 지 20~30년이 넘은 벽돌 외장재는 모르타르의 접착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오랜 기간 온도와 습도 등이 변화하면서 모르타르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벽돌 외장재는 결국 모르타르의 힘으로 지탱되는데, 주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붕괴 위험이 매우 크다"고 했다. 1993년 지어진 부산대 미술관 건물은 지난 26년 동안 한 차례도 벽돌 외장을 교체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외벽 마감이 건물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했다. 하영철 금오공대 건축학부 교수는 "현행 시설물안전법에 따라 실시하는 건축물 구조 안전 점검에서 외벽 마감재에 대한 조사 항목은 없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설물안전법 적용을 받는 건물은 1년에 2~3회 정기점검을 해야 하지만 외벽의 경우 육안으로 균열 여부만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외벽이 무너진 부산대 미술관은 지난해 교육부 '내진 보강 사업'에 따라 시행한 정밀 점검에서 'B등급'을 받았다. 경미한 결함은 있지만 건물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1년도 안 돼 외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점검 당시 외벽 안전은 살피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건물 외벽이 무너진 사고만 따진 통계는 없다. 다만 외벽 붕괴를 포함해 구조물이 무너져 소방관이 출동한 횟수는 2014년 570건에서 2016년 846건, 2018년 902건으로 늘었다.

[표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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