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52643309 0682019052352643309 09 0905001 6.0.13-RELEASE 68 동아일보 0

깡촌 마을 야부시, 5년간 규제개혁 실험으로 일본 변혁 선도한다

글자크기

[글로벌 현장을 가다]

130년 된 빈 집이 호텔로 변신, 기업이 농지 사들여 마늘 재배

2년간 진통 끝 ‘자가용 택시’ 도입… 야부시 특구 모델 전역으로 확산

동아일보

제본업체인 효고나카바야시의 직원들이 효고현 야부시에서 마늘 재배를 하고 있다. 일본 지자체 중 유일하게 야부시에서만 기업이 농지를 살 수 있다. 효고나카바야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박형준 도쿄 특파원

14일 일본 효고(兵庫)현 요카(八鹿)역. 수도 도쿄에서 차로 약 6시간 거리에 있는 농촌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야부(養父) 시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은 3명. 시청까지 가는 약 15분 동안 길거리에서도 70대로 보이는 노인 2명과만 마주쳤을 뿐이다.

면적 423km², 대부분이 산이고 계단식 논도 흔한 야부시(市)는 소위 ‘깡촌’이다. 1965년 4만여 명이던 인구는 4월 현재 2만3476명으로 줄었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36.7%에 달한다.

이대로 가면 유령 마을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 변화가 필요했다. 2008년 10월 취임한 히로세 사카에(廣瀨榮·72) 시장이 나섰다. 그는 2014년 3월 국가전략특구에 지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각종 규제를 없애 비즈니스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며 국가전략특구에 힘을 실었다. 6개 특구가 선정됐는데 대부분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였고 지자체로는 야부시가 유일했다. 그로부터 5년. 어떻게 변했을까.

○ 누에 치던 가정집이 하루 19만 원짜리 숙소로

동아일보

민박집을 찾았다. 양잠용 누에를 치던 가정집을 민박집으로 개조한 ‘오야오스기(大屋大杉)’. 약 130년 전에 지어진 3층짜리 목조 가옥이다. 나무 계단을 오르자 쉴 새 없이 삐걱대는 소리가 났다. 2층 일부에는 바닥이 없고, 나무 뼈대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3층 방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130년 된 공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된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침대 위 이불보는 특급호텔 수준으로 정갈했다. 화장실에도 최고급 비데가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오야오스기를 운영하는 나카하라 다이스케(中原大輔) 씨는 “야부시 민박집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야오스기는 숙박업소 ‘노트’에 소속된 민박집이다. 오래된 민가를 구입 혹은 임대한 뒤 내부를 수리해 호텔로 만든다. 노트는 2009년 효고현 사사야마시에서 오래된 민가를 매입하면서 이 업계에 진입했다. 처음부터 호텔업을 하고 싶었지만 당시 여관업법 기준(객실 10실 이상, 상주 직원 프런트 필수)을 충족시키지 못해 간이 숙박업체로 등록해야 했다. 간이숙박업 사업자는 화장실을 최소 4개 이상 만들고, 비상 탈출구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규제가 모두 비용 부담이었다.

노트는 정부에 꾸준히 호텔업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 2013년 7월 국가전략특구 전문가회의에도 참석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국가전략특구 자문회의는 2014년 특구 내 숙박업소에 한해 객실 수 및 프런트 인원 기준을 없앴다. 그 덕에 노트도 2015년 10월 오야오스기의 문을 열었다.

수리비는 약 3000만 엔(약 3억2700만 원). 하루 숙박료는 조·석식을 포함해 1인당 1만7000엔(약 18만5300원). 별다른 볼거리도 없는 시골마을 숙소가 특급호텔 가격을 받으면 장사가 되느냐고 물었다. 나카하라 씨는 “오사카, 교토 등 인근 대도시에서 오래된 민가에 투숙하며 옛날 정취를 느끼려는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찾아온다”고 답했다.

오야오스기는 지역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빈집으로 버려졌던 건물들이 호텔로 재탄생했다. 노트 측은 이불 빨래, 청소, 침대보 교체 등을 위해 지역민을 대거 고용했다. 오야오스기가 순항하자 일본 정부는 지난해 6월 여관업법을 개정해 호텔업에 대한 객실 수와 프런트 규제를 아예 없앴다. 이제 특구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집 1채만으로도 프런트 없이 호텔업을 할 수 있다.

아베 정부는 특구에서 규제 적용 예외 실험을 하고 문제가 없으면 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통째로 없앴다. 규제가 풀리자 노트도 성장했다. 노트는 현재 일본 25개 지역에서 호텔업을 하고 있다.

○ 제본업과 마늘 재배를 동시에

동아일보

오야오스기에서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제본회사 효고나카바야시(兵庫ナカバヤシ)를 찾았다. 정문 맞은편에 녹색 마늘 줄기가 끝없이 펼쳐진 밭이 나타났다. 회사 직원들이 마늘 농사를 짓는 장소라고 했다.

책을 만들면서 농사까지 짓다니…. 연결성을 찾기 어려운 조합에 의아했다. 놀라는 기자에게 고타니 히데스케(小谷英輔) 사장은 “제본업은 매년 1∼3월, 7∼9월만 무척 바쁘고 나머지 기간은 한산하다. 성수기에만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려 했지만 숙련된 기술자가 필요한 직업이라 성에 차지 않았다. 결국 기존 직원들을 계속 써야 했다. 비성수기에 이들에게 어떤 일을 시킬까 고민하다 ‘마늘 재배’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마늘 농사는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는 9∼12월과 수확 및 가공하는 3∼7월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절묘하게도 제본업 비수기와 맞아떨어졌다. 고타니 사장은 “지난해 마늘 농사로 올린 매출액이 약 7000만 엔(약 7억6300만 원)이고 올해 1억 엔을 기대한다”고 했다. 제본업만 할 때는 없었던 추가 수입이 생긴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 유일하게 야부시에서만 ‘기업의 농지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이 이런 독특한 부업을 가능하게 했다. 야부시는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되자마자 농지법에 관한 다양한 규제 해제를 건의했다. 이를 통해 2016년 11월 기업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5년간 한시적 특례를 받았다. 일본 전체에서 야부시만 받은 혜택이다.

효고나카바야시는 농지 매입 규제가 풀리자마자 약 3000m²의 농지를 매입했다. 이후 농사 면적을 늘려 지금은 무려 13만 m² 농지에 마늘 농사를 짓고 있다. 고타니 사장은 전체 직원 160명 중 15명에게 마늘 재배를 전담하게 했다. 농번기에는 20∼30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마늘 재배법은 농자재 대기업 얀마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고타니 사장은 “본업이 제본 회사인지 마늘 재배 회사인지 나도 헷갈린다”며 웃었다.

기업이 농지를 무분별하게 매입하면 고즈넉한 시골 분위기를 망치는 것 아닐까. 야부시 측은 “그래서 특정 기업이 농지 매입을 신청하면 반드시 현지 주민들과 협의하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매입 규제가 풀리고 3년간 효고나카바야시를 포함해 총 5개 기업이 농지를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 자가용 택시로 관광객 운송

동아일보

야부시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택시 영업을 하고 있는 여성이 활짝 웃고 있다. 야부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부시처럼 국가전략특구로 지정된 지자체가 규제 특례 건의를 하면 내각부 산하 국가전략특구자문회의가 심사한다. 회의는 2, 3개월에 한 번씩 열린다. 총리가 최종적으로 특례를 인정한다. 야부시는 숙박업 규제 완화 등 총 9건의 규제 특례를 인정받았다. 시청 기획총무부 직원 오카야마 마코토 주임은 “9개 특례 중 유일하게 힘들었던 작업이 ‘자가용 택시’”라며 “규제 완화에 2년 이상 걸렸다”고 했다.

자가용 택시는 주민들이 자신의 승용차를 택시처럼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도 태우고 오갈 수 있다. 대중교통 요금이 비싸고 배차 간격도 1시간에 1대에 불과한 지역 현실을 고려한 시도였다.

2016년 초 야부시가 자가용 택시 제도를 도입하려 하자 지역 택시회사 3곳이 강하게 반발했다. 택시회사로선 생존권이 걸린 문제였다. 시는 택시회사 관계자들과 꾸준히 만났다. 한 달에 한 번꼴로 협의하고 설득한 결과, 절충안을 만들 수 있었다.

핵심은 자가용 택시가 운행할 수 있는 구역을 명확히 정한 것이다. 야부시는 동서가 타원형으로 길쭉한 지형적 특성을 지녔다. 이 중 비교적 한산한 서쪽 지역 일부에서만 자가용 택시 운행이 가능하게 했다. 이 구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반드시 상업용 택시만 이용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야부시는 2017년 12월 중앙정부로부터 도로운송법 특례를 받아냈다.

현재 자가용 택시 운전사로 등록한 이는 16명. 오카야마 주임은 “기존 택시 영업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주민 편의를 높일 방법을 찾느라 정말 힘들었다. 결국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출장을 끝내고 도쿄로 돌아오는 길. 여러 생각이 스쳤다. 숙박업 규제 완화, 기업의 농지 매입 허용, 자가용 택시 도입은 어찌 보면 대단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민관 합동의 끊임없는 노력이 아닐까. 승차공유 서비스 도입을 두고 ‘분신(焚身)’이란 극단적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안타까운 국내 현실도 떠올랐다. “지난 5년간 각종 규제 개혁 실험을 했지만 아직 멀었다. 야부시가 시도한 규제 개혁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가도록 하고 싶다”는 히로세 시장의 말만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 야부에서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