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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현장에서/황인찬]김연철 장관이 빼먹은 칼럼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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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8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찾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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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정치부 차장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중식당.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학자 시절 때와 달리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사전 준비된 모두발언은 예정된 5분을 훌쩍 넘겼지만, 이어진 기자들의 현안 질의엔 사실상 입을 다물었다. 현장에선 “기사 한 줄 쓸 거리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푸념까지 나왔다.

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A hungry child knows no politics)”는 말을 강조했다.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에티오피아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강조하며 꺼낸 말을 인용하며 북한 미사일 도발에도 대북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한 셈이다.

사실 “배고픈 아이는…”이란 말을 처음 꺼낸 건 아니다. 그는 인제대 교수 시절인 2016년 9월 18일 한 신문 칼럼에서 이 말을 꺼내며 대북 지원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엔 큰 홍수가 난 함경북도에 대북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북한 5차 핵실험(2016년 9월 9일) 9일 뒤였다. 그런데 당시 칼럼에는 또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이날 간담회에선 인용하지 않았다. 미국이 에티오피아에 식량 지원을 하며 당시 독재 정권에 ‘하역비’를 지급했다는 대목이다.

그는 칼럼에서 “레이건 정부는 식량을 원조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주민과 정권을 분리하자는 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레이건 정부가 에티오피아에 식량지원을 할 때 하역비용으로 t당 12달러를 독재정부에 주었다. 그 돈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라고 적었다.

식량을 지원하며 독재정권에 하역비를 준 사례가 있으며,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할 때도 북한에 별도의 하역비 등을 지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국내 쌀 재고분 가운데 국내 소비 등을 뺀 30만 t 정도가 대북 지원에 쓰일 수 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35년 전 하역비(t당 12달러)를 기준으로 삼아도 360만 달러(약 43억 원)가 북한에 들어갈 수 있다.

물론 아직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최종 결정짓지 않은 상황에서 하역비 문제는 좀 이를 수 있다. 한 국제기구에 따르면 원조를 받은 국가가 모두 하역비를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북 식량 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을 놓고 과연 그 돈이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게 쓰이느냐, 혹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쓰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만큼 대북 지원 문제에서 투명성은 핵심적인 이슈다. 그런 관점에서 김 장관이 대북 지원 문제를 거론하며 하역비 문제를 빼놓은 것은 좀 석연치 않다. 오히려 정부가 먼저 다양한 원조 사례와 하역비 이슈를 공개하고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게 정석이 아닐까 싶다. 불필요한 대북 퍼주기 논란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황인찬 정치부 차장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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