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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번엔 19세기 아편전쟁...'전쟁코드' 부추기는 中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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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6일 연속 ‘항미원조 전쟁’ 영화 상영...시진핑 ‘새 대장정’ 선언
중 무역전쟁 경제충격...장기전 승리 위한 ‘희생’으로 포장...내부결속 강화
中 정부 주최 기자회견 학자 "미⋅중무역협상, 아편전쟁 연상시켜...상호 신뢰 중요"

‘전쟁 코드’가 중국을 휩쓸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쟁 행보’가 대표적이다. 시 주석은 지난 20일 마오쩌둥(毛澤東)이 공산당내 권력를 확고히 장악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1934년의 대장정 출발지 장시성(江西省) 간저우(竷州)시 위두(于都)현에서 "중국이 새로운 장정에 올랐다"고 선언했다. 21일엔 육군 보병학교를 찾아 장병들의 장애물 돌파훈련을 참관하며 "모든 학업은 전쟁과 승리에 초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22일엔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가 마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한 관변 경제학자가 미⋅중 무역협상을 아편전쟁에 비유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2일까지 9일 연속 반미(反美) 컬럼을 실었다. 중국은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관영 CCTV 영화채널(6)에 항미원조 전쟁(抗美援朝戰争)으로 불리는 6.25 전쟁 배경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예정됐던 프로그램은 모두 미뤄지거나 시간을 변경했다.

중국 인터넷에는 항일(抗日) 전쟁 영화 갱도전(地道戰⋅땅굴을 이용하여 벌이는 전투)의 주제곡에 미⋅중 무역전쟁 내용을 넣어 개사한 노래가 돌고 있다. 관영언론에 무역전쟁 대신 무역마찰이라는 표현을 쓰라는 권고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시 주석의 대미(對美) 항전 행보 배경은 20~22일 진행된 장시성 시찰 기간 던진 발언에 담겨있다. 무역과 첨단기술을 둘러싼 미⋅중 패권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약 3년간 치러진 항미원조 전쟁이나 2년간 진행된 대장정처럼 희생을 감수하면서 장기간 진행될 것임을 띄우면서 내부결속을 다지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전쟁코드로 위기의식을 불러 일으켜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기둔화의 충격을 ‘승리를 위한 희생’으로 포장하고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서 예정된 시 주석과의 만남에서 결실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시 주석의 장기 항전 행보는 이같은 기대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위기의식 부각시키는 ‘전쟁 행보’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 장시성 육군 보병학교를 찾아 장애물 돌파 훈련을 참관한 뒤 전쟁에서의 승리를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망


22일 관영 CCTV 저녁 7시 메인뉴스 신원롄보에선 전날 시 주석이 둘러본 육군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는 병사가 "시 주석의 훌륭한 전사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CCTV는 전날 신원롄보에서 시 주석이 장애물 돌파 훈련을 참관하는 장면만 5분에 걸쳐 방영했다. 훈련병들의 거친 숨소리까지 들리게 해 현장감을 높였다. 시 주석은 "현대전 특성을 파악하고 전쟁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가르쳐야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일 장시성 간저우시 위두현에 있는 홍군 장정 출발 기념관을 찾아 대장정 정신을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망


앞서 20일 시 주석은 1934년 10월 중앙 홍군이 장정을 위해 집결했던 위두현에 있는 출발 기념비를 찾아 헌화하고 홍군 장정 출발 기념관을 참관했다.

시 주석은 "당과 홍군은 하나 하나 벼랑 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최후에 승리를 쟁취해 믿기 힘든 기적을 이뤄냈다"며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장정에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시 주석은 "새로운 장정의 길에서 국내외 각종 중대한 위험과 도전을 이겨내고, 중국 특색사회주의 신승리를 쟁취하려면 여전히 전당과 전인민의 확고한 이상신념과 혁명의지에 기대야한다"고 강조했다.

♢시, 희토류 업체 가서 "전략자원" 강조...무역전쟁 무기화 가능성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업체를 찾아 “전략자원”이라며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망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20일 장시성 간저우(贛州)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업체 진리영구자석(金力永磁)을 시찰하면서 "기술혁신은 기업의 생명줄로 자체 지식재산권과 핵심기술을 보유해야 핵심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고 격렬한 경쟁에서도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며 "더 많은 관건이 되는 핵심기술을 장악하고 업종 발전의 고지를 선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진리란 1개 기업 뿐 아니라 중국 전체의 희토류 분포 및 생산현황을 보고 받고 "희토류는 중요한 전략자원인데다 재생 불가능한 자원으로 끊임없이 개발과 이용 기술 수준을 높이고 산업사슬을 확대하고 부가가치를 높여야한다"고 강조했다.미⋅중 무역협상 중국대표인 류허(劉鶴) 부총리를 대동한 시 주석의 발언을 두고 희토류를 무기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시 주석 시찰 소식이 전해진 날 정례 브리핑에서 "너무 많이 연상하지 말라"고 했지만 인민일보 산하 온라인 매체 협객도(俠客島)는 당일 저녁 올린 글을 통해 "덩샤오핑(鄧小平)이 1992년 장시성 방문때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고 말했다"며 시 주석 시찰의 의미를 부여해 이같은 관측을 부추겼다.

협객도는 "2016년 2월 발표된 미국 정부 보고서를 기초로 추정하면 미국이 자국내 희토류 공급망을 재건하는데 1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은 힘 내라"고 비꼬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가 하반기 희토류 생산 쿼터를 정하는 6월에 중국이 희토류를 무역전쟁의 무기로 삼는지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부 지역 6개성 1인자 불러놓고 제조업⋅혁신 반복 강조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일 중부 지역 6개성 1인자를 소집해 좌담회를 열고, 제조업 혁신 등을 강조한 8가지 지침을 내렸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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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은 21일 난창(南昌)에서 중부지역 굴기 업무 좌담회를 열어 장시를 비롯 산시(山西) 안후이(安徽) 허난(河南) 후베이(湖北) 후난(湖南) 등 6개 성 당서기의 보고를 받고 "국제와 국내의 각종 불리한 요인의 장기성, 복잡성을 분명히 인식해 각종 어려움 국면을 제대로 대응할 준비를 갖줘야한다"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시 주석은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할 일을 잘하는 것이라며 중부 지역 굴기를 위한 8가지 지침을 내렸다.

8가지 지침 가운데 5가지가 미⋅중 기술 패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지침으로 해석된다. △새 과학기술 산업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제조업의 고질량 발전을 추진하고 △핵심 영역에서 자주혁신 능력을 제고하고 △사업환경을 국제 일류 수준으로 고도화하고 △동부 연안과 해외 관련 지역의 연계 강화를 통한 신흥산업의 적극적인 이전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의 기회를 잡아 우수한 생산능력과 장비를 세계 무대로 내보내는 것 등이 그것이다.

시 주석은 형식주의와 관료주의 근절도 당부했다. 미국에 강경하게 대응하는 중국 지도부 탓에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당내 일각의 비판과 냉소주의에 경고를 한 것이다.

시 주석은 22일 장시성 업무를 따로 보고 받은 자리에서도 공산주의 원대한 이상과 중국 특색사회주의의 공동이상을 확고히 믿는 신앙인과 충실히 이행하는 실천자가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변 학자 "美 협상 기준 불명확…G20 미중 정상회담 의제도 불확실"

중국 정부 싱크탱크인 중국 국제경제교류센터 장옌성(張燕生) 수석연구원은 22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미⋅중 무역갈등을 촉발한 무역협상 방식이 서구 열강의 침략 전쟁인 아편전쟁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미국은 일괄적인 합의를 원하지만, 중국은 한발 한발 단계적인 합의를 원하고 있다"면서 "미국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는데 이는 1840년(아편전쟁이 발생한 해)을 떠오르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중국과 미국은 문화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무역협상을 통해 드러났다"면서 "같은 문장을 두고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털어놨다. 이어 "양국 간 갈등을 해결하려면 상호 신뢰회복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관영 신화통신도 지난 12일 논평에서 "중국은 이미 세계 2위 경제체로 가난하고 약한 옛 중국이 아니다"며 "중국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뇌가 아직도 19세기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장 연구원은 이번 무역협상이 결렬된 원인에 대해 "미국은 아르헨티나 G20 정상회의 때 회담을 가진 양국 정상이 합의한 것보다 중국이 5배나 더 많이 미국 제품을 사주기 원한다"면서 "또 협상하는 도중에 관세율을 높이는 등 협상의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미국 책임론’을 주장했다.

리융(李永) 중국 국제무역학회 전문가위원회 부주임도 이번 무역협상 결렬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면서 미국은 과거 일본과의 무역 분쟁에서도 똑같은 방식을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리 부주임은 "미국이 1980년대 일본과 무역갈등을 겪을 때 일본 제품에 제재를 가하고,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다"면서 "미국은 여전히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해 리 부주임은 "미국은 중국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면서 "마치 중국 기업은 하이테크 기술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연구원은 다음 달 오사카 G20 정상회담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 의제에 관해서는 "아직 어떤 것이 논의될지 불확실하다"고 내다봤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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