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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정부 ILO 협약 강행…비준되면 산업기능요원도 군대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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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요원은 ‘강제노동’ 제재 대상

공무원·실업자도 노조 결성 가능

전교조, 비준 즉시 합법 노조로

한국당 “시기상조” … 통과 힘들 듯

중앙일보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아직 비준되지 않은 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4개 중 강제노동협약을 제외한 3개 협약의 비준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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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제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를 담은 제29호 등 3개 협약이다. 강제노동 금지의 보충적 성격인 제105호는 비준을 유보하기로 했다. 선(先) 비준에 나선 셈이다.

그러나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기가 만만찮을 전망이다. 산업현장이 요동칠 정도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ILO 협약 비준은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은 상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ILO 핵심 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미비준 4개 핵심 협약 중 3개 협약에 대해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헌법상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을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관계부처 협의,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 개정 및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한다”고 덧붙였다.

ILO 핵심 협약 비준 문제는 1991년 ILO 가입 당시부터 논란이 됐지만 노사 모두 비준에 신중했다. 당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회장단 회의에서 “국내 노사관계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된 이후 비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국노총도 이듬해 “현 노동현실을 고려해 상당기간 유보돼야 한다”고 했다. 전투적 노사관계 리스크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상황에서 산업현장에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협약이 분단 상황 등 현실과 배치되는 점도 미뤄 온 이유다,

철도 멈추고 전기 끊어도 손 못 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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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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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ILO 핵심 협약에 대한 노사의 생각이 극명하게 갈린다. 노동계는 4개 협약의 무조건 비준을 요구 중이다. 경영계는 비준에 앞서 보완책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부당 노동행위 폐지 등이다. 한국만 유일하게 막고 있는 대표적인 노동규제다.

협약이 비준되면 그 즉시 이행 의무가 생긴다. 미이행 시 국제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미얀마는 2000년 6월 강제노동금지 제29호 협약을 위반해 경제제재를 당했다.

문제는 비준을 추진하는 협약이 산업 현장의 노사 구도는 물론 관행과 법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메가톤급 위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결사의 자유에 관한 두 협약은 노조를 결성할 자유와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포함한 단체행동권의 제약 없는 행사를 보장한다. 공무원이나 실업자를 막론하고 누구나 노조 결성이 가능하다. 협약 비준 즉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합법 노조가 된다. 실업자와 해고자도 기업과의 임금·단체협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노조 전임자에게 사용자가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것도 협약 위반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노조에 돈을 주면서 노사 담합구조가 만들어졌다”며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 노조 업무를 볼 수 있는 일정 시간을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타임오프제를 만든 것인데 이를 폐지하는 것은 실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현역·공익근무 선택권 주면 된다”

한국은 국가 기간시설에 파업이 발생해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 등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수유지 업무와 긴급조정제도를 운용 중이다. 협약이 비준되면 이 제도의 운용도 제약을 받는다. 파업을 무력화시키면 협약 위반이어서다. 이석행(폴리텍대학 이사장)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주장했던 “철도와 항공기를 멈추고 전기와 가스를 끊는 국가 신인도에 타격을 주는 총파업”이 벌어져도 국가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몰릴 수 있다.

강제노동 제29호는 의무 군 복무, 교도소 내 강제근로, 비상시 강제근로를 제외한 모든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본다. 대체복무의 형태인 공익근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 전문 연구요원도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협약이 비준되면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이 장관은 “본인이 원할 경우 현역으로 갈 수 있게 선택권을 주면 협약 위반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ILO의 판단은 다르다. 이집트와 터키가 군대에 필요한 인원을 초과한 징집병을 공기업이나 사기업에 배치한 것에 대해 제29호 위반으로 판정했다. 2007년 8월 한국의 공익근무에 대한 질의 회신에서도 “협약 적용 제외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더욱이 산업기능요원이 수출 기업에 종사하면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의 ‘ILO 비준 협약 위반’이 돼 무역분쟁도 감수해야 한다.

정부가 협약 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여서다. 그러나 지난해 7월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했지만 노사 합의에 실패했다. 공약을 이행하려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다 EU의 비준 압박에 대한 액션도 필요한 시점이다. EU는 FTA에 근거해 ILO 핵심 협약 비준을 놓고 분쟁 해결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 장관은 “EU에도 (비준 노력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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