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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칸도 반했다…웃음·눈물 다 낚은 봉준호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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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첫선 ‘기생충’ 잇단 호평

우리 사회 빈부격차 신랄한 풍자

범죄·공포·코미디·드라마 버무려

송강호·이선균 등 협연도 돋보여

2000여 관객 9분 기립박수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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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기생충’의 배우들이 21일(현지시간) 레드카펫에 섰다. 왼쪽부터 송강호, 장혜진, 이선균, 조여정, 이정은, 박소담, 봉준호 감독, 최우식.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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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분의 상영 시간 내내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상영 후에는 기립박수가 9분이나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21일(현지시간) 뜨거운 호응 속에 베일을 벗었다.

경쟁부문 21편 중 상영순서로는 열다섯 번째다. 올해 영화제가 지난 14일 개막한 이후 전날까지 공개된 해외 거장들의 작품 중 별다른 화제작이 없었던 가운데 ‘기생충’의 반응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자정 넘은 늦은 시간에 상영이 끝났음에도 2000여석 뤼미에르 대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떠날 줄 모르고 환호했다. 이들 중에 봉 감독과 ‘설국열차’(2013) ‘옥자’(2017)를 함께한 할리우드 배우 틸다 스윈튼도 있었다. “땡큐, 땡큐 포 커밍. 밤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갑시다.”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하는 봉 감독의 목소리에 벅찬 감정이 느껴졌다. 함께한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도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기생충’은 올해 초청작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다.” 칸영화제 크리스티앙 쥰 부집행위원장의 말이다. 이날 영화를 본 폴란드 배급 관계자는 “칸영화제에서 이렇게 많이 웃고 긴장했던 영화도 오랜만”이라고, 브라질의 한 배급 담당자는 “봉준호의 모든 트레이드마크를 가지면서도 매우 놀랍고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고 감탄했다.

이 영화는 범죄 드라마면서 블랙코미디, 서글픈 휴먼 드라마이자 공포 스릴러이기도 했다. 한 장르를 꼽자면 ‘봉준호 영화’라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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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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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판타지 등 장르물을 비틀어 시대의 맥을 짚어내는 게 그의 장기. 이번엔 그런 재미와 의미가 황금비율을 이뤘다.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네와 IT그룹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정반대 두 가족이 뒤얽히는 기상천외한 희비극에는 빈부격차가 빚어낸 부조리한 사회상이 대담하게 소용돌이친다.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명문대생을 사칭해 박사장네 고액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과정은 케이퍼 무비 뺨치도록 경쾌하고 치밀하다. 온가족이 손발이 척척 맞는 지점에선 관객들이 장르물을 즐기듯 환호를 내질렀다. 각본을 겸한 봉 감독은 대사부터 풍자 감각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를 탁구공 튀기듯 주고받는 배우들의 호흡도 빼어나다.

‘살인의 추억’(2003)부터 봉 감독과 네 번째 함께한 송강호는 이번에도 표정 하나로 주제를 다 담아낸다. ‘괴물’(2006)의 못난 아빠 강두와 같고도 다르다. ‘옥자’에 이어 감독과 다시 만난 최우식은 요령 만점 캐릭터와 섬세한 감정선을 고루 선보인다. 박 사장의 “심플한” 아내 연교 역의 조여정은 여러 TV 드라마에서 사연 많은 부잣집 사모님 역을 변주해온 경력이 빛을 발한다. ‘옥자’의 슈퍼돼지 옥자 목소리 등으로 봉 감독과 함께해온 배우 이정은도 눈에 띈다. 이번에는 박 사장네 가사도우미 역을 맡아 남다른 에너지로 중반부를 장악한다.

공간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봉 감독은 SF영화 ‘설국열차’에선 얼어붙은 세계를 달리는 기차 칸을 계급사회에 빗댔고, 괴수 재난영화 ‘괴물’에선 미군의 독극물로 오염된 한강 다리 밑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우리 사회의 더 깊고 어두운 밑바닥을 작정하고 파고들었다.

남이 버린 쓰레기봉투, 취객의 오줌발이 내다보이는 기택네 쾨쾨한 반지하 집과 유명 건축가가 지은 박사장네 대저택은 믿기지 않을 만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동시에 어느 동네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현실적이다. 흙수저는 흙수저대로, 금수저는 금수저대로 살기를 강요하는 듯한 이런 극과 극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은 죄가 되어 무겁게, 무겁게 쌓인다.

“예상을 뛰어넘으려 최선을 다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의 매 순간이 허를 찌른다. 2년 전 넷플릭스 영화 ‘옥자’에 이어 두 번째 경쟁부문을 찾은 봉 감독의 수상 가능성도 점쳐볼 만하다.

다음날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다양한 장르의 변주에 대해 “언제나 장르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이상한 장르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 틈바구니로 사회현장을 담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들을 향해서는 “내가 쓰는 너무 변태적인 기이한 스토리도 이분들 필터 거치면 격조있게 바뀐다”며 감사를 표했다.

해외언론의 호평도 이어졌다. 스크린 데일리는 “봉준호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확실한 성취와 각별하게 한국적인 영화란 점에서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버라이어티는 “야성적인 신작”이라며 감독의 이전 영화와 비교해 “웃음은 더 어두워졌다. 분노는 더 무자비해졌다. 흐느낌은 더 절망적이 됐다”고 짚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별 다섯 개 만점에 네 개를 매겼다.

봉 감독은 사전에 전 세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스포일러 자제를 요청했다.

칸(프랑스)=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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