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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강갑생의 교통돋보기] 익숙한 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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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파리 지하철에는 스크린 도어가 매우 드물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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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열차 TGV를 앞세운 철도 선진국인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지하철이 처음 등장한 건 1900년이다. 그해 열린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됐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지하철은 1863년 런던에서 등장했다. 현재 파리의 지하철 노선은 모두 14개다. 여기에 지선 2개를 더하면 16개나 된다.

이 중 대부분은 1940년대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많은 사연도 간직하고 있겠지만, 낡고 지저분한 것도 사실이다. 지하철역은 좁고, 통로는 어둡고 냄새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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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하철은 통로가 비좁고 어둡다. 청소 상태도 불량하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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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플랫폼엔 우리나라엔 흔한 스크린도어도 별로 없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14호선과 개선작업을 한 1호선 정도에만 있다. 그래서 추락 사고도 곧잘 난다고 한다.

열차 역시 상당수 낡고 이용에 불편하다. 출입문도 자동으로 열리는 대신 승객이 손잡이를 누르거나 당겨야만 작동하는 열차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파리 시민들은 별로 불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지에서 만난 한 교민은 “불편한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딱히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익숙한 불편’인 셈이다.

이런 현상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돈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어 보인다. 지하철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개선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를 조달하려면 지하철 요금을 올리거나, 아니면 세금을 투입해야 한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시민들이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 이게 꺼려지면 불편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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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지하철 차량은 좁고, 낡은 경우가 많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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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떨까. 파리 지하철 정도의 상황이었다면 아마도 곳곳에서 거센 불평과 항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요금 인상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시설은 좋아져야 하지만 내 주머니에서 직접 돈이 나가는 건 싫다는 거다.

경제학 용어에 ‘수익자 부담 원칙’이란 게 있다. 해당 사업 또는 투자로 혜택을 입는 사람이 어느 정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돈이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화수분을 지니고 있지 않은 한 감당이 힘들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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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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