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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의 입] 문대통령의 잇단 말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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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이다. 벨기에 국왕 특사 자격으로 벨기에 공주가 왔다. 공주 이름이 아스트리드, 나이는 50대 중반이다. 공주는 개인 자격으로 온 것이 아니라 엄연히 공무 수행을 하러 왔다. 한국·벨기에 양국 현안을 조율하러 온 것이다. 아스트리드 공주는 벨기에 특사 자격이었다. 역대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도 이끌고 왔다. 그런데 몇몇 매체에서 이 공주의 미모를 빗대서 ‘얼굴이 외교다’ ‘심쿵’ ‘우리 공주님’ ‘판타지한 느낌이 든다’ 같은 자막을 달아서 논란이 됐다.

그런데, 정작 아스트리드 공주를 청와대로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 “몇 년 전에 아버님이신 필리프 국왕께서 방한(訪韓)하신 적이 있습니다.” 헐, 헐, 헐, 이다. 필리프 국왕은 아스트리드 공주의 오빠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오빠’를 ‘아버님’으로 말실수 한 것이다. 오빠를 아버지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웃을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공식 방문한 상대국 특사의 기본적인 가족관계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지청구는 피할 수 없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사례도 있다. 올 3월 문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갔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사말로 “슬라맛 소르!”라고 외쳤다. 오매, 오매. 그런데 이 말은 말레이시아 말이 아니라 인도네시아어였다. 이에 해당하는 말레이시아 인사말은 “슬라맛 쁘탕!”이었다. 이 뒤로도 문 대통령이 다른 행사에서 인사말을 “슬라맛 말람”이라고 했다. 이 말도 맞는다, 틀린다, 뒷말이 무성했다.

우리도 외국에 나가면 헷갈릴 때가 많다. 너무 똑 부러지게 인사말을 건네도 정나미 떨어진다. 때로는 다소 어눌하게, 때로는 엉뚱하게 인사를 건네면 오히려 상대편이 긴장을 풀고, 더 정감이 갈 때도 있다.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독일인들의 농담에서 멍청한 주인공역을 도맡았다. 슈피겔 시사주간지가 독자를 상대로 조사했더니 무려 45%가 “헬무트 콜을 소재로 농담”을 한다고 대답했다.

콜의 농담을 몇 개만 소개하면 이렇다. ▲'왜 콜 수상은 번개가 치면 웃음을 지을까?' '사진을 찍는 줄 알기 때문이지.' ▲한 기자가 콜 수상에게 질문하였다. '수상께서 태어나신 고향에서 위대하고 유명한 사람이 난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내가 회상하기로는 단지 작은 갖난애들만 태어났습니다.' ▲ 파리를 방문한 콜 수상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에펠 탑 앞을 지나갔다. 콜 수상이 대통령에게 물었다. '프랑스는 아직도 석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헬무트 콜 서독 수상에 대한 농담은 도대체 몇 개나 될까?' '하나도 없지. 모두가 사실이니까.' ▲콜 수상은 자신이 대부(代父)로 되어 있는 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서점에 들렀다. '안데르센 동화집을 사려고 하는데 저자(著者)가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 기자가 콜 수상에게 질문했다. '수상 각하, 달에도 생명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이요. 밤마다 불도 켜져 있는 걸요.‘

놀라지 마시라. 이런 헬무트 콜이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을 이끌면서 무려 16년 동안 독일 총리를 맡았다. 콜의 농담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일 뿐, 국가에 해를 끼치는 대목이 전혀 없다.

문재인 대통령한테는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농담으로 넘길 수 없는 말실수를 한다는 점이다. 어제도 한·미 군 수뇌부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간담회를 가졌다. 최근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을 ‘단도미사일’이라고 했다. 나중에는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말해서 ‘단도미사일’이 됐다고 청와대가 둘러댔지만, 혹시 문 대통령 머릿속에 ‘탄도미사일’이라는 생각이 가득한 것 아니냐는 추측들이 나왔다. 대북 제재에 있어서 ‘탄도 미사일’과 ‘단거리 미사일’은 큰 차이가 있다.

북한 김정은의 눈치를 보느라, ‘탄도 미사일’을 ‘탄도 미사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에 빗대 ‘문길동’이라는 농담을 감수해야 하는 문 대통령, 저녁밥이 소태처럼 목구멍에 쓰디쓸 때마다 헬무트 콜을 기억하시라고 권해드린다. 전 세계 군사전문가들이 ‘단도 미사일’이라는 최신형 미사일이 개발된 줄 알았다는 농담이 들리더라도 털털 웃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 눈을 부릅뜨고 농담의 공백을 지켜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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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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