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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구조적 변화 외면하는 헛다리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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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경제학계는 치열한 논쟁에 빠져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반대하는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노동소득 증가가 경제성장률과 비슷하게 증가해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현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는 진보학계에서는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으니 소득주도성장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주장은 어떤 통계를 어떻게 적용하느냐는 문제로 좁아진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노동소득으로 보면 소득분배가 악화된 것으로 나오고, 반대로 자영업자 소득을 사업소득으로 보면 소득 양극화 현상이 심하지 않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다. 이들의 논쟁을 단순화하면 ‘결국 자영업의 위기가 구조적인지? 아니면 정책실패에 따른 것인지?’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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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당시 동반성장위원회는 ‘초과이익공유제’라는 혁신적인 정책을 제시했었다. 대기업이 초과이익을 얻은 경우 이를 협력 중소기업과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 당시에 큰 논란이 있었다. 21세기 들어 모든 정부는 포장만 다를 뿐 소득 양극화 해소를 가장 중요한 정책 과제로 내걸었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사용했던 통계는 소득양극화가 확대되고 있다는 기존 통계였다.

경제학자들의 최근 논쟁은 일견 한가해 보인다. 중소기업이 존폐의 위기에 싸여있고, 소득양극화는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불안을 야기할 정도라는 것은 10여년 전부터 이미 상식이었다. 또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국민 대부분은 인지하고 있는데, 통계 몇가지를 재조합하면서 논쟁을 벌이는 장면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자영업 문제를 장기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1990년대 초 한국의 자영업자는 국민소득(국민 순처분가능소득)의 22% 정도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2017년에는 13%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 기간 중 자영업 종사자도 전체 근로자의 30%대에서 서서히 줄고 있지만, 여전히 자영업 창업이 활발해서 2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자영업이 어려워진 가장 큰 이유는 공급과잉 때문이다. 많아도 너무 많다. 반면 자영업과 대척점에 있는 온라인 쇼핑은 전체 소비의 10%를 넘겨 80조원 이상이고, 해외 직구도 20억달러를 돌파했다(2017년 기준). 해외 여행으로만 연 35조원을 쓰고 있고, 과도한 가계부채로 이자만 연간 60조원이나 부담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취향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치 소비의 영향으로 어디를 가든지 인터넷에서 맛집을 찾고, 화려한 대형 식당을 선호한다. 고객이 스스로 주문하는 키오스크 식당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배달 전문업체인 배달의민족은 지난 4월 월간 이용자 수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결국 구조적으로 자영업의 존립기반이 약화되고 있고, 동시에 자영업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영업의 위기가 한국만의 현상일까? 선진국 중 자영업자 비중이 거의 15%에 육박하는 영국도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다. 온라인 쇼핑 비중이 전제 소비의 20%에 육박하면서 유서 깊은 영국의 쇼핑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아동복 브랜드인 짐보리는 아마존에 밀려서 파산신청을 했다. 자영업자 비중이 20% 이상인 브라질, 터키, 멕시코, 이탈리아 등에서 사회 갈등이 유독 심한 것은 자영업의 구조적 위기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기존의 경제학은 모든 것이 팽창하는 고성장기에 만들어졌다. 지금과 같이 역사상 최고 수준의 공급과잉, 부채 그리고 양극화가 고정변수였던 적이 없다. 4차 산업혁명은 기존의 경제학이 가지고 있던 기초 가정을 무너트리고 있다. 빈곤한 고령자가 많아지면서 박근혜 정부 이후 늘어난 전체 일자리 숫자와 60세 이상 고령자의 일자리 증가가 비슷하다. 또한 일자리는 제조업과 자영업에서 줄고, 사회복지 분야에서 늘어나는 현상이 고착화된 지 오래다. 전 세계적으로 20조달러를 풀어도 물가가 오르기는커녕 디플레를 걱정하는 시대다. 극단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미니멀리즘이나 ‘소확행’을 기존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영업 문제를 넘어 한국의 미래를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여건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이 과거 통계 몇 개를 조합해서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본질을 가리는 정치적 행위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의 경제 담론은 우물 안에서 공중 3회전, 이단 옆차기 하고 있는 꼴이다. 우물 밖에서는 폭풍이 불고 있다. 구조적 변화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세상임을 언제쯤 이해할까?

홍성국 전 대우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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