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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원자로 제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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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18일 일본 이시카와현에 있는 시가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연료봉 사이에 삽입돼 있던 제어봉 5개가 아래로 빠지면서 방사선과 열이 급격히 방출되는 임계사고가 발생했다. 관할 호쿠리쿠(北陸)전력은 이를 내내 감춰오다 8년 만인 2007년 3월15일에야 공개했다. 이후 며칠 간격으로 각지 원전의 과거 사고가 차례로 공개됐다. 도쿄전력은 1978년 11월2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에서 제어봉 5개가 빠져 7시간 반이나 임계상태가 지속된 사실을 무려 29년 만에 털어놓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규모 방사성물질이 유출된 그곳이다.

원자로의 제어봉은 핵분열 반응 속도를 조절하는 안전장치로, 자동차의 브레이크에 해당한다. 핵연료 속 중성자를 흡수해 핵반응의 폭주를 막는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제어봉 조작 미스는 대형사고로 이어지곤 했다. 1986년 4월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가 대표적이다. 원자로 정지 때 냉각펌프에 전력이 제때 공급되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제어봉을 과도하게 빼냈다가 원자로 출력이 폭증하면서 발생했다.

그런데 일본에서 빈발한 제어봉 탈락사고는 비등수형 원자로(BWR)의 구조적 결함과 관련이 크다. 가압수형 원자로(PWR)와 달리 비등수형은 제어봉을 아래에서 위로 삽입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중력을 거슬러 제어봉을 삽입해야 하니 복잡한 장치가 필요하고, 미묘한 조건변화가 발생하면 빠져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원전은 제어봉을 위에서 꽂는 가압수형이어서 이런 염려는 덜하다. 하지만 지난 2월20일 고리 4호기의 제어봉 1개가 고장났고, 2014년 2월에는 한울 원전 5호기 제어봉 제어카드가 고장나 원전이 멈추는 등 국내 원전사고에서도 제어봉이 단골로 등장한다.

지난 10일 한빛 원전 1호기 사고도 제어봉의 제어능력을 측정하다 발생했다. 당시 무면허 직원이 제어봉을 조작하다 사고를 키운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로조종감독자 면허 소지자가 지시·감독하는 경우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사람도 원자로를 운전할 수 있다”고 했다. 사고를 내고도 ‘무면허 운전’을 감싸려는 태도가 당혹스럽다. 대형사고는 예외없이 인재(人災)였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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