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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전인권의 내 인생]⑪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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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기가’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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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들국화는 용감한 밴드였다. 들국화는 운도 따랐다. 당대 세계 팝 음악의 생각들을 꿰뚫는 지혜가 있었다. 우리는 군부의 연장정부인 5공의 탄생에 반기를 들었다. 이유는 자유와 사랑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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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길들여진 모든 방송 쇼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저항했다. 그리고 우리를 좋아하는 모든 친구들도 같은 생각으로 참여한 듯한, 방송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을 했다.

그것에 대해 방송국 역시 창법 미숙, 가사 치졸 등을 이유로 내세워 우리들을 왕따시켜 버렸다. “예의가 없다. 복장이 짜여진 방송에 맞지 않는다” 등등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으로…. 특히 5공 정부는 일반시민들에게는 장발을 어느 정도 허용했지만 우리 밴드는 장발 상태로는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했다.

그때 우리는 동아기획의 앨범 팔기 작전으로 앨범에 ‘이 앨범을 사면 들국화 공연을 반값으로 볼 수 있다’는 반값 티켓을 넣었다.

우리의 반항을 누군가는 ‘들국화정신’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들국화의 인기는 사건 같았다. 정권의 입맛대로 놀아나지 않는 밴드,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의 불만을 대신 표출할 줄 아는 밴드. 이름도 들국화여서, 민초를 연상케 했다.

그 당시 들국화는 장기공연을 제시했고 기획사 I.n.g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I.n.g의 문석봉 대표는 우리 밴드를 자랑스러워하는 관객과 우리 모두에게 최고로 배짱이 잘 맞는 연극기획자였다.

그때 나는 큰 공연(3000석 규모)을 마치면 기다리는 관객을 피해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때 우리 밴드는 선물을 정말 많이 받았다. 공연이 끝나면 우리에게 선물을 주려고 기다리는 관객이 엄청 많았다. 지금도 정식 공연이 끝나면 관객의 절반이나 3분의 1 정도는 남아서 기다리면서 옛 시절에 받지 못했던 사인을 받거나 새로운 음반을 사와서 사인을 요청한다. 그리고 관객도 나도 서로 고맙다고 인사한다.

어쨌든 1980년대 당시 나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기사 겸 동생이 기다리는 내 차에 들어간 후 무조건 잠 오는 약을 먹었다. 그리고 동생에게 내가 새벽 녘에 깨어나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을 것 같은 숲속에 데려다놓아 달라고 말하고, 잠을 자버렸다. 그것은 계속되어온 공연의 피로감을 그나마 풀 수 있는, 내가 고안해낸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 날 깨어보니 차는 그네가 있는 산정호수 입구의 숲속에 멈춰 있었다. 때마다 운전하는 동생은 바뀌었는데 그날은 아마 인도에서 오랫동안 인생공부를 하고 돌아온 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동생은 잠시 나갔는지 차 안에는 나와 기타밖에 없었다. 자주 함께 다니던 성욱(들국화의 키보드 허성욱)도 없었다.

숲과 가을꽃들 속에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기타 코드를 잡고 그냥 노래했다.

“이렇게 맑은 아침에/ 이렇게 밝은 햇살이/ 여기가 거기야/ 여기가 거기야/ 이렇게 넓은 마음에/ 똑같이 저기저꽃이/ 여기가 거기야/ 여기가~/ 나를 내버려둬두 돼/ 나를 어디든지 데리고 가도 돼/ 거기야 여기가 거기야.”

여기까지 그냥 단숨에 만들어졌다. 코드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절묘한 게 신기했다.

2절은 여럿이 함께 차를 타고 밤길을 달릴 때 기타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녹음에 들어갔다.

그때 기타 치던 최구희가 갑자기 얘기했다. “형! 이 노래는 최고예요. 정말 좋아요. 기타 치고 싶게 해요.”

구희는 녹음이 끝난 후 제주도로 가서도 전화를 했다. “형 이곳 사람들이 전부 이 노래 정말 좋대요!”

경향신문에 연재해온 나의 칼럼 ‘전인권의 내 인생’. 나는 이런 글을 신문에 쓴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고 항상 쓸 때마다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신문에 글을? 그리고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는 밴드다. 남자끼리의 터치 없는 연애라고도 말한 적 많다. 밴드가 어려워질 때는 다른 방법을 찾거나 쉬어가야 한다. 쉴 때는 가차없이 쉬어가야 한다. ‘걷고 걷고 Im glad i found you. 약속의 땅이 아니어도 내가 아는 만큼 한다는 건 내가 어디에서든 진실한 당신을 만나기 위해~’ (닐 영/전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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