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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종구 칼럼] ‘5·18 능멸 삼각동맹’의 음험한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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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종구
편집인


세월호 참사 뒤 유족들을 향해 쏟아진 수많은 모욕과 악담, 조롱 중에서도 최악은 ‘일베’ 회원들의 ‘폭식 투쟁’이었다. 서울 광화문 유가족 단식농성장 옆에서 벌어진 피자와 치킨 파티는 한마디로 인간 포기 선언의 장이었다. 16세기 독일의 신학자 페터 빈스펠트는 ‘죽음에 이르는 7대 죄악’ 중 폭식을 상징하는 악마로 거대한 파리의 형상을 한 ‘벨제붑’을 선정했는데, 슬픔에 잠긴 세월호 유족 옆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은 영락없는 벨제붑 악귀였다.

엊그제 5·18 민주화운동 39돌을 맞은 광주 금남로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부산 갈매기’ 노래를 불렀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도 비슷한 형상이 겹쳐져 다가왔다. 다른 곳도 아닌, 피로 물들었던 역사의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5·18 영령들을 능멸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가요를 열창한 것은 인간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5·18에 ‘호남’ 꼬리표를 붙여 그 의미를 왜곡하려는 사악한 죄를 빈스펠트가 살아 있다면 어떤 악마라고 이름 붙일 것인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폭식 투쟁이나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가요 따위는 너무 조악하고 치졸해서 오히려 효능이 떨어진다. 이런 벌거벗은 모습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점잔을 가장한 냉소다. “화합이 사라진 반쪽짜리 기념식이 됐다”는 따위의 관전평이 그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뒤섞고, 진실과 거짓을 휘젓고, 본질과 지엽말단을 헝클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어 뒤죽박죽 진흙탕을 만들어버린다. 이로써 갈등과 단절은 더욱 견고히 완성된다. 세월호 폭식 투쟁 때도 그랬다. “폭식 투쟁도 잘못이지만, 단식 투쟁도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는 식의 물타기가 횡행했다. 이런 말의 밑바탕에는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한 근본적인 냉담과 무감각이 깔려 있었다.

객관을 가장한 관전평 안에는 음험한 노림수가 서식하고 있다. ‘5·18 망언’ 의원 징계를 회피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책임 문제는 증발하고 ‘악수 건너뛰기’ 시비 따위가 논란의 전면에 등장했다. 황 대표는 어느 틈엔가 ‘광주에서 박해받는 정치인’이라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독재의 후예자’ 논란도 마찬가지다. 황교안 대표의 약력을 살펴보니 그는 1987년 6월에 서울지검 공안1부 검사가 됐다. 독재를 몰아내기 위한 6월 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무렵에 그는 정확히 시민들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주동자에 대해 ‘사형’ 구형을 한 경력도 있다. 그 주동자가 훗날 황 대표의 ‘정치 멘토’가 됐느니 하는 이야기가 ‘미담’처럼 언론에 대서특필됐지만 그것은 결코 미담이 아니라 독재정권과 발을 맞춘 무자비한 행적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나 더 있다. 그가 군 면제 판정을 따낸 시점은 1980년 7월이었다.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이 민주주의를 위한 숭고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그는 두드러기라는 가당치 않은 이유로 군대를 빠지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던 셈이다. 독재의 후예자라는 말이 옳으니 그르니 하는 논쟁이 허무한 이유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최초로 인정한 것은 자유한국당의 전신 정당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이 역시 부질없는 바람 소리다. 김 전 대통령은 비록 3당 합당으로 과거 독재 세력과 손을 잡긴 했지만, 최소한 당내 의원들한테서 ‘5·18 망언’이 나오는 것은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면면이나 언행을 보면 자기네 정당의 뿌리를 과거 민정당에서 찾는 게 마땅하다.

5·18 망언을 방조하는 자유한국당,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보수단체, 물타기 양비론을 펴는 보수언론은 굳건한 철의 삼각동맹이다. 이들의 5·18 능멸 행위는 자신들의 정치적 일체감과 동질감을 확인하고 정권 타도의 투쟁 의지를 다지는 제례 의식이다. 황 대표가 ‘광주에서 박해받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고 동분서주할 때 보수단체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응원가로 화답했다. 영·호남을 갈라치고 국토를 토막 내서라도 정치적 이득을 챙기겠다는 목적 앞에 5·18은 좋은 먹잇감이다. 그리고 보수언론은 ‘5·18이 화합의 장이 되지 못한 것은 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프레임을 확산시킴으로써 이 교활한 음모의 삼박자를 완성하고 있다. 이 땅에 5·18 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날은 여전히 아득히 멀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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