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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우리가 잘 몰랐던 에너지 이야기] 구제받지 못한 스리마일 / 이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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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스리마일을 구제하지 마라.”(No Three Mile Island Bail Out.)

지난 3월, 미국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 40주년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스리마일 핵발전소 1호기 구제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었다. 사고가 일어난 발전소는 스리마일 2호기였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1호기는 사고 직후 가동을 멈췄지만, 핵발전소 운영사는 재가동을 계속 추진했다. 결국 지역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5년 스리마일 1호기는 재가동되었다. 이후 스리마일 1호기는 20년 수명연장 심사도 통과해 2034년까지 가동이 보장된 상태였다. 1974년 스리마일 1호기가 가동을 시작했으니, 60년 운영허가를 취득한 것이다.

이 일을 두고 국내 핵산업계에서는 사고가 일어난 스리마일 핵발전소조차 안전성을 인정받았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최근 셰일가스와 재생에너지 열풍이 불면서 핵발전의 경제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설비 보강으로 비용이 늘어나는 것도 핵발전소 경제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만들어진 지 40년이 넘은 낡은 기계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급기야 스리마일 1호기를 운영하던 엑설론은 2017년 핵발전소 폐쇄 계획을 발표했다.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하기보다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엑설론의 폐쇄 계획 발표 이후 펜실베이니아 주의회에는 핵발전을 보조하는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를 지원하는 ‘탄소 프리 에너지’(Carbon Free Energy) 프로그램에 핵발전을 추가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펜실베이니아주 핵발전소에 매년 5억달러(약 5973억원)를 지원하게 된다. 지원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가정에서는 1.53달러(약 1827원)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낡은 핵발전소를 보조하기 위해 비용을 더 지급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큰 논쟁이었다. 핵발전 지지자들은 온실가스 저감을 이유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결국 주의회가 법을 통과시키지 않자, 엑설론은 기존 계획대로 올해 9월 스리마일 1호기를 영구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은 스리마일 1호기뿐만 아니라 다른 핵발전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핵발전소의 35%가 수익성이 없거나 폐쇄 예정이다. 한때 104기에 이르던 운영 중 핵발전소는 98기로 줄었고, 그중 절반인 49기가 가동된 지 40년이 넘었다. 미국은 민간발전사업자들이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수익성이 없는 발전소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 해체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일부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으로 옮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너무 급격히 핵발전소가 줄어 다시 석탄화력발전소가 늘어나지 않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일부 보조금을 줘서라도 핵발전이 줄어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방법으로 탈핵과 탈석탄을 함께 진행하는 방안이 제시되면서 급격히 줄어드는 핵발전을 막을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과 무관하게 국내에서는 핵발전이 값싼 에너지원이며,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핵산업계의 홍보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핵발전 종주국 미국에서조차 핵발전은 낡고 비싼 에너지원이 되고 있다. 핵발전이 기후변화의 대안이라는 주장 역시 핵폐기물 문제 등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온실가스 문제도 심각하지만 처분 방법이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역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핵발전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수십년간 진행되었지만 그동안 핵산업계가 주장해온 안전하다, 저렴하다, 기후변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스리마일 1호기 폐쇄 결정이다. 스리마일 사고 이후 4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스리마일 1호기가 어떤 논란을 거쳐 폐쇄하게 되었는지 꼭 한번 살펴보았으면 한다. 스리마일 1호기의 현재가 우리나라 핵발전소의 미래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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