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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전날 파산 절차 상담···의정부 일가족, 살려고 발버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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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3명이 사망한 의정부 아파트 입구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jtb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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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 신청을 하려면 어떤 서류가 필요한가요”

경기 의정부에서 일가족 3명이 사망하기 하루 전인 19일. 숨진 아버지 A(50)씨는 서울의 한 개인회생·파산을 상담해주는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파산 신청을 하려면 어떤 절차가 있고,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상담자는 절차와 필요 서류를 간략하게 안내해줬다. 빚이 얼마가 있고, 자산은 어떤 게 있는지 따져보는 구체적인 상담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2~3일 전에는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보려 한 정황도 A씨 휴대전화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주변의 도움도, 법적 구제 방법도 알아보았지만 파산 상담 다음 날인 20일 A씨와 아내, 딸은 숨진 채 발견됐다.

경기 포천에서 목공예점을 운영하던 A씨는 1년 전쯤 가게 문을 닫았다. 7년 동안 가게를 이어왔지만 폐업을 면치 못했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은 A씨는 일자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50대 남성이 4인 가족을 먹여살릴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A씨 아내가 가게 종업원으로 일하며 월 150만원 가량을 벌어 가족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 가족에게는 지금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한 대출이 2억원 정도 있다. 1금융권과 3금융권(대부업체) 빚이라고 한다.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나 정확한 채무관계 조사 결과에 따라 더 많은 빚이 가족들의 마음을 눌러왔던 정황이 나올 수도 있다.

개인 회생ㆍ파산 신청할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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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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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파산 절차까지 생각했지만 왜 극단적 선택을 해야했을까. 개인 파산은 자신의 능력으로 빚을 갚을 수 없는 개인이 가진 자산으로 빚을 갚고, 소득이 없으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 더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서울회생법원 관계자는 “파산 절차의 경우 자산이 얼마 있는지 더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개인 회생보다는 시일이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A씨의 경우 소득이 없기 때문에 일정 금액 변제금을 갚아야 하는 개인 회생 대상자에는 해당되지 않아 파산 신청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회생ㆍ파산절차를 진행하는데 드는 비용도 문제다. 준비해야 할 서류와 절차를 보통 법무사나 변호사 등 법률 대리인을 통해 하는데 200~3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당장 먹고 살 방법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 비용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에서는 서울회생법원과 연계해 변호사 30명 정도 규모로 적절한 수임료를 받고 회생ㆍ파산절차를 대리해주는 제도를 운영중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이런 제도를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빚만 물려주지 않을까 우려한 부모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함께 목숨을 끊는 이른바 ‘가족 살인’ 뒤에는 부모들의 빚 걱정이 깔려 있다. 이번 사건에도 아들 진술에 따르면 사망 전 부모가 '자신이 사망하면 빚을 자녀들이 그대로 떠안게 되는게 아닌가' 걱정했다고 한다. 남겨줄 것이 빚뿐이니 차라리 자녀도 함께 죽는 방법을 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상속법상 부모가 사망하면 자녀들에게 빚이 상속되는 건 맞지만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가정법원에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를 신청하는 방법이다. 상속 포기는 말 그대로 상속분을 포기하는 절차로 비교적 간단하다. 한정승인은 부모의 상속분 내에서만 내가 빚을 책임지겠다고 신청하는 것이다. 단 한정승인과 상속 포기는 부모 사망 뒤 3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하고, 이 기간이 지나면 빚도 그대로 상속된다. 양소영 변호사는 ”법률적으로 보장이 되는 제도이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나이가 드신 분들은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 상속법이 빚의 대물림에 방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산법 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관기 변호사는 ”한정승인ㆍ상속포기의 방법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상속법은 선량한 시민에게 책임 부담을 넘기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누가 죽으면 애초에 그 사람의 재산을 모아 빚을 청산한 뒤 남는 것을 자녀들에게 주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빚이 넘어가는 일은 없다”며 “우리 법은 살아 나가려면 너희가 찾아 움직이라고 부추기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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