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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8] 가깝지만 세상에서 가장 먼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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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규나 소설가


단단하게 언 양고기 다리를 높이 쳐들고 남편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다. 쇠망치로 가격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조금 휘청거리더니 쿵 하고 쓰러졌다. 내가 남편을 죽였어. 그녀는 두 손으로 고깃덩어리를 꽉 움켜쥔 채 시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경찰의 아내는 자신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로알드 달 〈맛있는 흉기〉 중에서. 손 꼭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만큼 애틋한 모습도 드물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머리 하얀 남편이나 허리 굽은 아내를 스쳐갈 때는 가슴 한편이 아릿하다. 얼마나 많은 고개를 굽이굽이 넘어왔을까, 때론 마음 설레며 쓰다듬지만 때론 죽일 듯 소리 지르고 싸우면서도 함께 자식 낳아 기르고 가르치며 오늘까지 무사히 왔구나, 싶은 것이다.

형제나 부모·자식 간에도 풀기 어려운 갈등과 대립은 늘 존재한다. 하물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자와 여자일까.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지만 등 돌린 부부는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마주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먼 사람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로알드 달의 단편소설 '맛있는 흉기'는 남편을 살해한 아내가 완전 범죄를 모색하는 이야기다. 흉기는 저녁 요리에 쓰려고 냉동실에서 방금 꺼낸 양고기 다리. 소설에서는 수사하러 나온 남편의 동료 경찰들이 아내가 대접한 양고기를 싹 다 먹어치움으로써 살인 증거가 사라진다.

수많은 추리소설 속에는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소설의 범인들은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사체를 훼손하고 알리바이를 조작하여 범행을 은폐하려 한다. 거짓말을 하거나 술과 정신병을 핑계 대기도 한다.

현실은 자주 소설가의 상상력을 추월한다. 골프채로 아내를 패서 심장 파열로 죽게 한 남편이 ‘환자가 기절했다’며 119에 전화했다고 한다. 도망가거나 범죄를 조작해서 혼란을 주지 않은 것을 그나마 고맙다고 해야 하는건가.

[김규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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