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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릴러의 여왕? 이번엔 제대로 웃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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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판타지로 돌아온 정유정]

동물의 몸 속으로 영혼이 들어간 사육사 이야기 '진이, 지니' 출간

"제가 원래 사람 웃기는 걸 좋아하는데, 사이코패스가 살인하는 소설에선 아무리 유머를 넣어도 안 웃어주셔서 슬펐거든요. 그런데 이번 소설은 남편도 킥킥대면서 웃더라고요. 이제 큰소리칠 수 있게 됐어요. '나 유머 좀 했지?'"

'스릴러의 여왕' 정유정이 따뜻하고 발랄한 판타지 소설 '진이, 지니'(은행나무)로 돌아왔다. '7년의 밤' 등 그의 전작들은 '악(惡)의 3부작'이라 불리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해외 반응도 뜨거웠다. '종의 기원'은 21개국에서 번역됐고, 미국에선 사전 주문만으로 초판이 모두 팔려나갔다. 유명 출판사 펭귄북스는 "한국의 스티븐 킹"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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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은 "손가락으로 총을 겨누는 건 사육사가 침팬지들을 만날 때 나누는 몸짓 인사"라며 "소설을 위해 침팬지와 보노보를 취재하면서 생명을 대하는 타당한 자세를 배웠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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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의 신작 '진이, 지니'는 그가 처음 선보이는 판타지 소설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은 사육사 '이진이'의 영혼이 '보노보'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는 설정. 보노보는 침팬지와 닮은 포유류로 인간과 DNA가 98.7% 일치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려 사투를 벌이는 이진이와 그를 돕는 청년 백수 김민주가 사흘간의 모험을 펼친다.

―판타지 소설이라 어려운 점은 없었나.

"판타지 소설은 독자가 믿어주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장르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믿게 하기 위해 사실주의 소설보다 더 사실적으로 썼다."

―빈틈없는 취재로 유명하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센터와 구마모토 보노보 보호구역을 다녀왔다. 구마모토에서 만난 왕따 보노보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맨날 무시만 당하다가 낯선 인간이 등장하니 신이 났나 보다. 관심을 끌려는 녀석의 온갖 재롱을 몇 시간 동안 관람하게 돼서 소설에 큰 도움이 됐다."

정유정은 색연필로 그린 소설 속 배경의 지도, 시간대별로 인물의 행동을 기록한 시간표, 백과사전 두께만 한 취재 노트를 꺼냈다. 그는 "지도를 보며 보노보가 지금 몇 번째 나무에 올라가 있을지까지 정해놓는다"면서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나온다"고 했다.

얼핏 보면 황당해 보이는 설정의 소설은 작가가 간호사로 일하던 20대 시절 중환자실로 실려온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어머니의 마지막 사흘. 미동도 없는 어머니를 앞에 두고 물었다. "어머니의 영혼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 무엇을 했을까.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있었을까?" 질문은 죽음을 앞두고 동물의 몸이 된 사육사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머니의 마지막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엄마는 내 평생의 트라우마였다. 일찍 엄마를 잃었고, 그 후 가장 노릇을 하면서 살아가야 했다. 언젠가는 죽음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슬프게 쓰긴 싫었다. 사랑스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그리고 싶었다. 등단작 '내 심장을 쏴라'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주제에 매달려 왔다.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인생을 끌고 가는 전사라고 생각한다."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알고, 그걸 위해 내 삶 전체를 던질 수 있는 욕망.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죽기 전까지는 삶을 치열하게 사랑해야 한다. 요즘 에세이들이 '뭐가 돼도 괜찮아'라고 하는데 무책임하다. 왜 아무거나 되나? 내 인생인데! 출세나 성공과 상관없는 목표라도 좋으니 한번 달려보면 좋겠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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