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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김현기의 시시각각] 우리 앞에 놓인 두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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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협상과 북·미 협상은 닮은꼴

느긋함과 인식차, 한국이 최대 타격

우리의 ‘장밋빛 환상’ 정말 괜찮나

중앙일보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격화일로다. 트럼프와 시진핑 두 지도자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다. 총만 안 쐈지 전쟁이나 다름없다. 유탄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음 달 말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 세계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김정숙 여사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를 왜 안 했느니 같은 한가하고 유치한 소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미·중 협상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양국의 협상은 여러모로 북미 비핵화 협상과 흡사하다. 향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해 볼 요긴한 분석이 될 수 있다. 공통점은 세 가지.

#1 미국과 중국 모두 시간은 자기편이라 생각한다. 북·미 모두 비핵화 협상을 서둘지 않는 것과 닮은꼴이다. 중국의 1분기 성장률은 연율로 6.4%. 미국도 2.4%로 기록적인 호황이다. 양국이 서로 25%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중국이 1.22%포인트, 미국이 0.31%포인트 성장률에 타격을 입을 것(IMF 예측)이란 분석도 나오지만, 양국 모두 “그 정도는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버틴다. 서로 ‘플랜 B’를 내놓지 않는다. 하노이 이후 중장기 전 태세에 돌입한 북·미와 유사하다. ‘정치’를 생각하는 트럼프와, ‘존엄’을 생각하는 시진핑의 협상 스탠스도 비핵화 협상의 트럼프·김정은과 닮았다.

#2 양국의 현격한 인식 및 기준 차이도 흡사하다. 중국은 미국이 건넨 합의안 초안을 리뷰(검토)한다고 했지, 합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 생각은 전혀 달랐다. 중국이 무역구조를 개선할 법적 조치를 검토한다고 했을 때 미국은 ‘법률 개정(legislation)’으로 받아들였지만, 중국은 그 보다 하위개념인 ‘시행령(regulation)’으로 받아들였다. 비핵화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 전체의 핵 폐기’를, 북한이 ‘영변’으로 국한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구글·인텔·퀄컴을 통해 중국 목을 서서히 조여가는 것이나, 유엔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가는 것도 같다.

#3 마지막은 “잘못되면 가장 곤란해지는 게 한국”이란 점이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급감할 경우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가 최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대중 수출 중 중간재 비율이 79%나 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를 예견한 금융시장의 불안을 이미 우린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에선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될 경우 원화가 최대 20%가량 평가절하될 것으로 본다. 달러당 1350원까지 간다는 얘기다. 생산·소비 감소에 환율까지 요동치면 우리 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훤하다. 중재자를 외쳤지만, 워싱턴의 무관심, 북한의 조롱, 일본의 무관심 속에 고립돼 가는 한국 외교와 사정은 같다.

사실 경제나 외교나, 우리의 스탠스에 더 큰 공통점이 있을지 모른다. 바로 ‘끝없는 낙관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1인당 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30-50클럽) 중에서는 (우리가) 미국 다음으로 성장률이 높았고, 지금도 그런 추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장밋빛 분석을 내놨다. 하지만 그로부터 단 열흘 만에 우리는 ‘30-50클럽(7개국) 중 꼴찌’, ‘OECD 22개 회원국 중 1분기 경제성장률 꼴찌’ 란 참담한 ‘진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대통령의 말이 우습게 됐다. 차라리 말을 말지 그랬겠다. 하노이 회담 불과 25분 전까지 북미정상회담 성공을 자신한 것과 다를 게 없다. 경제도 외교도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데, ‘장밋빛 환상’이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다.

경제는 결과다. 리더십은 자질이 아닌 실적이다. 트럼프가 뭐라 허풍을 떨건 흥청망청 호황에 가게마다 손님이 넘치고, 그곳마다 “내년에도 트럼프!”를 외치는 미 국민들 모습을 보며 다시금 느끼는 어쩔 수 없는 진리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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