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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분수대] 참 희한한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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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권혁주 논설위원


심리학에 ‘관념운동 효과’라는 게 있다. 무심결에라도 보고 들은 것들이 곧바로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미국 뉴욕대 연구진이 실험으로 증명했다. 언어 능력을 보겠다며 대학생들에게 단어를 몇 개 주고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 학생 중 한 그룹에는 ‘주름’ ‘외로움’처럼 노인과 관련한 단어를 섞어 제시했다. 연구진은 문장 만들기를 마치고 나가는 학생들의 걸음 속도를 몰래 측정했다. 노인과 관련한 단어를 봤던 학생들은 다른 학생보다 10%가량 느리게 걸었다.

인간은 이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암시에 걸려 행동한다. 여론조사 설문을 조심스럽게 작성해야 하는 이유다. 질문에 복선을 깔든지 하면 진짜 여론이라 하기 힘든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엊그제 전교조의 조사 발표가 그런 비판을 받았다. 일단 ‘박근혜 정부가 재판 거래를 통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것을 아는가’라고 물은 뒤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해직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다는 법 규정을 어기는 바람에 법외노조가 된 사실은 쏙 뺐다. 그러고서 “국민 53%가 전교조 재합법화에 동의한다”고 발표했다. ‘30년간 참교육을 목표로 촌지근절, 국정교과서 반대 등을 해온 전교조를 신뢰하느냐’라고도 물었다. 이를 통해 ‘신뢰한다’가 55%라는 결과를 얻었다.

에너지정보문화재단의 ‘에너지 국민 인식 조사’도 비슷하다. 질문들이 이런 식이었다. ‘에너지 전환이란…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확대를 의미하며… 에너지 신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정책이 필요하다는 데 찬성인가, 반대인가.’ 이렇게 묻는 데 반대하는 국민이 있을까. 찬성이 84%였다. 아무튼 희한한 여론조사들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은 여론조사인가, 아니면 ‘여론이 이렇다’고 주장하는 가짜뉴스인가.

권혁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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