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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인사이드칼럼] 北 `제2 고난의 행군`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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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 위기를 맞고 있다." "북한이 제2의 고난의 행군에 접어들고 있다."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더욱이 북한 식량난 문제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최근 몇 주간 또다시 빈번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기야 북한 공식 매체조차 '제2의 고난의 행군' 가능성을 언급하니 국내외 일부 전문가와 언론만을 탓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그럼 한번 찬찬히 따져 보기로 하자. 앞으로 북한에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발생할 가능성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난의 행군'은 1990년대 중반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30만명 혹은 300만명 전후로 대규모 아사가 발생한 시기다. 북한 전체 인구가 약 2500만명이니 전체 인구의 1% 이상 또는 10% 이상이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그럼 앞으로 현재와 같은 혹독한 제재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대규모 아사가 발생할 것인가. 당시 여건과 현재 여건을 비교해 보자.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은 고난의 행군이 가져다준 변화에 대해 "토끼와 양은 다 죽었고, 여우와 승냥이만 살아남았다"고 말하곤 한다. 물론 다소 과장된 이야기다.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정부의 식량 배급이 사실상 중단됐음에도 "조금만 기다려라" "하지만 장사(상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정부 말만 믿고 따랐던 사람들은 다 굶어 죽었지만 정부 말을 듣지 않고 장사를 했던 사람들은 다 살아남았다.

그에 못지않은 변화는 시장화의 확산이다. 탈북 동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순수 계획경제에서 소득을 획득하는 사람보다 시장경제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주민의 현물·현금 자산 보유 규모도 상당히 많이 늘었다.

최근 대북 제재가 북한 주민에게 주는 충격을 일부 상쇄하는 요인으로서 이른바 시장의 자생력을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즉 수출 격감으로 소득이 격감하더라도 장사의 품목과 방법을 바꾸거나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시쳇말로 '어떤 식으로든 먹고산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시장경제 영역은 외부 세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합법적인 영역도 넓거니와 불법적인 영역까지 포함하면 더욱 넓다.

생계 수단을 찾지 못했으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처분·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가재도구, 컴퓨터, 휴대전화 등을 팔아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가장 큰 것으로는 자신의 주택을 판매하면 된다. 물론 북한에서 주택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다. 하지만 시장화의 확산은 주택마저 상품 대상으로 포섭하면서 이제 주민들은 국가 소유 주택을 사적으로 매매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다.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극한의 상황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1990년대와 달리 현재는 시장이 발달돼 있고 중국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굶어 죽지 않는다. 따라서 돈만 손에 넣으면 된다. 이제 북한에서는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는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졌으며, 개인이 현금 소득을 획득할 수 있는 물적 여건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개선됐다. 물론 그 물적 여건은 제재가 앞으로 수년 이상 지속된다면 크게 흔들리겠지만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준은 아니다.

우리는 북한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닌데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뭐, 북한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라고 대충 넘어가는 것일까. 그런 자세로 어떻게 북한을 상대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양문수 객원논설위원·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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