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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검찰개혁의 열쇠 형사소송법 312조](3)판사가 조서 읽고 개요 파악 ‘일제 사법 잔재’…재판 시작부터 ‘유죄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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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신문조서의 역사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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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형사소송법 312조 1항은 일제 식민지 시절로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는 본토에서도 시행하지 못하던 국가주의 형사제도를 식민지에서 실험했다. 대만과 조선 그리고 괴뢰 만주국에서 검찰 주도 형사사법제도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검찰이 만든 조서를 재판의 증거로 쓰는 일이다. 문준영 부산대 교수는 “나치독일의 이론과 공명하며 전체주의적 사법제도론으로 전개됐다”고 저서 <법원과 검찰의 탄생>에서 밝혔다. 형사소송이 피고인과 검사의 대결이 아니라 국가기관(판사와 검사)과 피고인 간 대결이 됐다. 이에 대한 문준영 교수 설명이다. “투쟁의 장이 아닌 치료의 장, 법정이 아닌 병원, 이것이 전체주의 형사법이론이 그리는 형사재판의 이미지였다. 범죄인의 치료를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서로 협조해야 한다. 따라서 병든 피고인을 앞에 놓고 재판소·검찰·변호인이 협력하여 치료하는 구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일본 형소법이 아닌 조선형사령을 썼는데 통역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검사와 변호인의 신문을 제한했다. 신문은 재판장에게 청구해야 가능했다. 대신 검사에게 조서를 작성할 권한을 주어 조서재판을 했다.

일제, 식민지서 실험적 시행

해방 후에도 ‘형편상’ 이어져

헌재는 2차례 “합헌” 정당화


광복을 맞아서도 이러한 형사재판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현행 312조는 1954년 형소법 제정 때부터 있었다. 당시에는 299조였다. 같은 해 형소법 초안 공청회에서 김병로 대법원장은 10년 정도는 검찰의 조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판유일주의로만 나가는 것도 이론으로는 좋은데 지금 우리 현실에서 수사기관을 무시하고 (판사가 예단을 갖지 않기 위해) 기소장 하나만 보고 공판에 나가서 비로소 (진술자의 동의를 받은 신문조서를) 개시(開示·열어봄)한다면 우리가 오늘날 가진 법관의 기능능률이나 인원과 예산으로는 도저히 사건을 처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을 떠나서는 되지 않아요. (중략) 한 10년 안에는 변동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준영 교수는 “수사기관이 신문조서를 만들고, 검사는 그것을 첨부해 공소장을 보내고, 법관은 조서를 미리 읽고 공판에 들어가는 방식을 10년간은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특히 강제수사가 아닌 임의수사에서도 조서를 작성할 수 있게 만든 것은 식민지 시절보다도 나빠진 것이었다.

10년이면 된다던 현실론은 70년 가까이 이어졌고 형소법 312조 1항이 합헌이라는 근거가 됐다. 증거능력이 있는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는 헌법 위반이라는 1995년과 2005년 위헌소송에서 헌법재판소는 모두 합헌으로 결정했다. 2005년 결정에서는 위헌의견이 4명이었다. 합헌의견은 현실론을 극단으로 밀고 나아가 헌법무용론까지 주장했다. “검사를 비롯한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전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면 형사소송에 있어서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피고인은 형사절차의 진행과 함께 유죄판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느끼면 종전의 자백진술을 부인하기 쉬운 데 반하여, 법원으로서는 진술거부권(헌법 제12조 제2항 후단)으로 인하여 피고인에게 새로운 진술을 요구할 수 없으므로 그가 진범일지라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거능력이 있는 검찰의 조서 덕분에 진술거부권을 뛰어넘어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녀재판과 고문수사를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근대의 산물인 묵비권을 “찔리는 게 있겠지. 털면 다 나온다”는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합헌의견 재판관들이 주장한 나머지 이유들은 이미 의미가 없어졌다. 소송법 원칙을 벗어나 검사의 피의자신문조서 같은 전문(傳聞)증거를 써도 된다면서 그 이유를 배심제나 참심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전문법관에 의한 재판을 하고 있는 제도에서는 전문증거 배제의 필요성이 배심제나 참심제를 채택한 경우보다 크지 않다.”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 법관과 달리 왜 한국 판사만 전문증거를 사용해도 되는지 의문이지만, 설령 그 말이 맞다 해도 한국에도 2008년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되면서 부당한 논거가 됐다. 합헌의견은 또 이 무렵 나온 대법원 판결로 312조 1항의 문제점이 해소됐다고도 했다. 조서가 내 말대로 쓰였다고 피의자가 인정해야만 증거로 쓰인다는 판결이다. “대법원은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실질적 진정 성립까지 인정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중략) 법원이 피고인의 공판정 진술보다 검사 앞에서의 진술을 우선한다든가 하는 우려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헌재의 예상이 무색하게도 2015년 대법원은 법정진술보다 검찰 조서를 더 믿겠다고 선언했다.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해온 100년에 이르는 역사와 이를 정당화한 헌재 결정은 법원의 실무관행을 더욱 위헌적으로 만들었다. 현행 형소법 312조 1항은 2007년에 개정됐고, 2005년 헌재의 위헌의견을 반영했다. 길고 복잡한 조문 때문에 증거능력이 까다롭게 인정되는 것으로 오해된다.

“검사가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동일하게 기재되어 있음이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의 진술에 의하여 인정되고, 그 조서에 기재된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머리에 검찰 논리 들어오면

판사가 조서 깨기 어려워져”

피고인 ‘조서 부인’ 거의 불가

전관예우 불러 ‘법정 오염’도


하지만 “법조항과는 반대로 판사가 검사의 조서를 깨기 어렵다”고 검사 출신과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설명한다. “조서가 공소장과 함께 오던 시절에는 판사들이 조서부터 읽어 개요를 파악했다. 이렇게 검찰의 논리를 머릿속에 넣고 나서 변호사에게 무죄를 입증하라는 식이었다”고 전직 형사재판장은 설명한다. 헌법이 선언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뒤바뀐 것이다.

지금은 피의자신문조서가 공소장보다 조금 늦게 오지만 판사들이 일하는 방식은 다르지 않다. 피의자가 조서를 부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판사가 결국 다 읽게 된다. 부인하려면 조서의 어느 단어가 잘못됐는지 일일이 짚어야 한다. 수사관의 질문이 섞여 있고 답변이 합쳐져 있어 자신이 설명한 취지와 다르다고 말해서는 소용없다. 형사소송규칙 134조 1항에서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검사 작성의 피고인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된 내용이 피고인이 진술한 내용과 다르다고 진술할 경우, 피고인 또는 변호인은 당해 조서 중 피고인이 진술한 부분과 같게 기재되어 있는 부분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재판 경험이 많은 현직 부장판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피고인이 어떤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해 더러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면 포스트잇 같은 것으로 가려놓는데 그게 판사 머릿속에서 지워질지 아닐지 생각해보라. 마트에서 가격표를 새로 붙여놓아도 결국 떼보게 되는 심리와 같다.” 그래서 형소법 312조 1항이 국회에서 삭제되지 않는다면, 판사들이 형사소송규칙 134조 1항을 위헌으로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률의 위헌 여부는 헌재가 판단하지만, 명령과 규칙에 대해서는 판사도 판단한다.

앞으로 검찰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지면 판사들은 피의자가 법정에서 동의한 조서만 읽는다. 동의하지 않으면 조서는 버려지고 판사 앞에서 양측이 직접 신문한다. 현재 증인신문조서를 다루는 방식과 같아진다.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한 형소법 312조 1항은 형사재판만 부당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법제도의 핵심인 형사법정을 오염시켜 결과적으로 사법제도 전체를 무너뜨린다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검찰이 시민 일상·정치 개입

형소법 312조, 사법제도 물론

민주주의까지 위태롭게 해


이른바 전관예우도 312조 1항의 부작용이다. “검찰 수사 과정을 감시하고 방어하는 목적이라면 억대 수임료를 줘가며 검찰 전관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다. 검찰에서 증거능력이 있는 신문조서를 자의로 만드니까 어떻게든 조서에 내 말이 담기게 하려는 것”이라고 검찰 출신 변호사는 말한다. 특수부 수사를 받은 기업인은 “구치소에서 보니 고소인이 전관 같은 ‘백’이 있으면 수사관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고 고치지 못하도록 이런저런 심한 압박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검찰이 시민 일상과 정치 과정까지 좌우하며 국가운영을 주도한다는 지적이 있다. 판사 출신 변호사 얘기다. “이 조항으로 국가의 형벌권을, 재판하는 판사가 아닌 수사하는 검사가 행사하게 된다. 민사분쟁을 형사사건으로 만드는 한국에서 검사가 사생활에 전반적으로 개입하게 만들고, 정치분쟁을 모조리 검찰로 넘기는 현실에서 정치에까지 개입하게 만든다. 결국 시민이든 정당이든 검찰권력을 동원하는 쪽에서 승리하는 시스템이 된다.” 형소법 312조 1항 때문에 민주주의까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 시리즈 끝 >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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