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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은미희의동행] 선생님의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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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선생님께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종종 죽비를 때리듯 문자를 보내 게으른 제자를 깨워주시곤 했다. 내가 먼저 형편을 묻고 안부를 여쭈어야 했는데 자리가 뒤바뀐 것이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나는 얼마나 게으르고 부족한 제자일까.

문자만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전화로 살아있는 동안 가끔 얼굴을 보며 사는 이야기나 나누며 지내자고 했지만 나는 그 약속마저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선생님은 외로우신 모양이었다. 정말, 한분 두분 주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고, 그 친구들을 보내는 선생님의 마음은 남다를 것이다. 지난해 말, 선생님은 당신이 보고 싶은 사람을 몇 명 부르시어 성대한 만찬을 베풀어 주셨다. 호텔을 빌려 나눈 저녁이었는데, 그곳에서 선생님은 살아서 치르는 당신의 장례식이라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가시처럼 마음에 박혔다.

선생님의 건강이 예전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주위에서 들었다. 하긴 팔순을 넘기셨으니 신체 여기저기가 조금씩 망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찾아봬야지 하면서도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약하게도 선생님의 문자를 받고 나면 마음 한편에서 따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아직 선생님께서 나를 잊지 않았구나, 싶어 미소까지 괸다. 타인의 속내를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치기 탓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등대 같은 분이셨다. 내가 인생의 여러 문제로 방황하고 있을 때 길라잡이가 돼 주시던 분이 선생님이셨고, 또 소설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주시던 분도 선생님이셨다. 가명으로 투고한 소설을 두 번이나 뽑아준 이도 선생님이셨다. 꼭 그런 인연이 아니더라도 나는 선생님의 작품이 좋았고, 작가로서의 태도도 좋았다. 선생님은 소설이 가져야 할 이론보다는 주로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세계에 대해 일러주시곤 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에게 그것만큼 또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기실 선생님의 제자사랑은 애틋했다. 종종 제자들을 불러 술을 사주시기도 했고, 밥도 사주셨고, 여행도 함께 떠났다. 우리는 많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한 생의 모험객이었다. 아쉽게도 함께 어울려 선생님을 찾아다녔던 문우들도 나이가 들고 각자의 삶에 골몰하면서 이전의 그 유대감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당신의 자리에서 문자를 통해 당신이 거기 있음을 일러주시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스승처럼 어려우면서도 또 가장 편하게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관계도 없다. 그게 진정한 사제관계가 아니겠는가.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스승이 스승답지 못하고 제자가 제자답지 못하는 그런 정명에 위배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참스승이 있어 우리는 성장하지 않는가. 죽비처럼 문자로 나를 깨우는 선생님처럼 나도 그 누군가에게 변치 않는 이정표가 됐으면 좋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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