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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오늘의시선] 정신질환범죄 방지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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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돌봄 심리치료 서비스 부재 / 심리적 안정 지원할 대안적 모델 필요

유학이나 교환교수 시절 만났던 미국 교수 중 일부는 자신들의 외래 심리치료 클리닉에서 정신질환 성범죄자를 위해 지속적으로 심리상담을 제공해 그들에 대한 법원의 심리치료 명령을 집행하곤 했다. 환자 중 일부는 조현병을 지닌 자도 있었고, 우울증 환자도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하는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을 관찰해보면 대부분이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사회 내로 퇴원시킨 환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금은 국립법무병원으로 명칭이 변경된 치료감호소 가출소자도 정신의학적으로 보자면 약물의 복용으로 질병이 완화돼 지역사회로 돌아온 자들이다.

세계일보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폭력 전과 전력의 방화 살인범 안인득처럼 재범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이는 지역사회 안에는 이들을 돌볼 심리치료 서비스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안인득은 혼자서도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로 조현병 증상이 완화된 자였는데, 다만 이웃에게는 다양한 위해를 가했던 전력자였다. 그의 포악함은 조현병 때문이라기보다는 성격적인 문제 때문인데, 결국에는 가족도 함께 살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소수의 정신병 환자를 감당할 수 있는 사회 내 재활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심지어 입원절차마저 환자의 의사에 반해 집행되기 어렵게 돼 있다 보니 묻지마 흉기난동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미국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범죄 방지를 위해 정신과 약물은 의사가 처방하지만, 심리치료는 심리학자도 널리 제공함으로써 환자들이 보다 다양한 사회 내 서비스를 받게 한다. 사회복지나 심리, 나아가 성폭력 분야의 전문가들은 각 주에서 자격증 제도를 운영해 전문성을 보장해주고 추후 자격관리를 하면서 지역사회의 안전망에 주요 업무를 담당한다.

필자가 일했던 형사정책 분야에서도 심리학자로서 전문성을 배양할 수 있는 수련과정이 있었는데 그런 시설은 다름 아닌 교도소였다. 교도소의 심리치료과에서 수년간 근무한 심리전문가들은 주에서 인정하는 수련과정을 만들 수 있었고, 법정 분야의 전문심리사를 육성했다. 이 수련과정을 거친 사람이 주로 형사사법제도 내에서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고, 성범죄자에게 심리치료를 제공한다. 이들 전문가는 심리치료에만 전문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사 절차에 대해 법률가 못지않은 이해도와 범죄자의 특성에 해박했다.

그리고 교환교수 시절 매우 많은 대학원생과 교수들이 교정시설 내 혹은 사회 내 사법기관에서 정신질환 범죄자를 대상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심리치료를 통해 그들이 완치되는가’였다. 질문을 받은 교수는 한참을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리고는 신중하게 한 답변이 바로 ‘치료 대신 관리’(management instead treatment)라는 것이었다. 즉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에 대해서는 약으로 증상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려우니 심리치료나 사회적 지지 등을 통해 이들의 상태가 유지되고 관리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위험한 구성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함과 동시에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반 시민의 삶에 있어서도 안전을 도모하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그저 정신질환자를 가두고 격리하고 약물만 강제로라도 복용시키려고 하는 작금의 사태를 마주하면서 요즘 도모되는 여러 가지 대안이 환자를 위한 것인지 묻고,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도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까 자문해본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은 결코 분명하지가 않다. 지금처럼 입원만이 강조돼 지역사회 서비스가 구축되지 않는 동안은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시간을 지연시키는 일일 뿐이다. 3개월 입원이 6개월 입원으로, 또 1년으로 격리기간만을 늘리는 것은 결국 폭탄 돌리기에 불과한 일이 될 것이다. 이들 정신질환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지역사회 재활서비스가 절실하다. 다시 말해 약물치료만이 강조되는 의료모델이 아닌 심리적 안정을 달래고 지원해주는 대안적 모델이 필요한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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