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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기고]감정평가 못하는데 이름은 ‘한국감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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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토지주택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국토정보공사…. 모두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이다. 이름만으로도 각 기관의 주요업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공기업의 정체(identity)가 더 궁금하다면 국토교통부 홈페이지 ‘기관소개’에 소상히 설명되어 있다.

경향신문

그렇다면 최근 공시가격의 부정확성과 불투명성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한국감정원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어떻게 소개돼 있을까? 주요임무와 기능을 ‘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 즉 ‘감정평가’를 하는 기관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의 영문명칭은 ‘Korea Appraisal Board’이고 ‘Appraisal’은 ‘감정평가’의 영문표현이다. 이름에 걸맞게 제대로 정체가 잘 소개된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름과 달리 한국감정원은 ‘한국감정원법’에 따라 감정평가행위를 할 수 없다. 한 술 더 떠 감정평가행위를 하면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감정평가업계와 한국감정원의 갈등은 부동산업계에 널리 알려진 얘기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공기업이지만 한국감정원법이 시행된 2016년 9월1일 이전까지 한국감정원은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의 부칙에 근거한 ‘의제감정평가법인’으로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일개 회원사에 불과했다.

또한 감정평가산업은 이미 민간영역에서 활성화됐기에 한때 민영화 대상이었다가 이명박 정부 초기 공공기관선진화정책에 따라 기능조정 대상으로 축소된 적도 있었다.

지금의 ‘한국감정원법’은 2015년 4월9일 당시 감정평가사협회장과 한국감정원장의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8개 항목의 합의안 중 첫 번째가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업자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이다. 국토교통부도 2015년 12월28일과 2016년 8월31일 두 차례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감정원이 감정평가업무에서 철수하며 업무 영역을 놓고 민간업계와 다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은 국민에게 오해를 유발할 수 있음을 질책하면서 한국감정원의 사명 변경을 주문했고, 김학규 한국감정원장도 긍정적으로 답변했으나 지금은 사명 변경 불가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마도 아직까지 뚜렷한 자체 수익사업을 찾지 못하여 보험차원에서 ‘조사·산정’이라는 외피로 감정평가업무를 걸치고 있는 듯하다.

조직의 명칭은 그 조직의 존재목적과 성격·업무를 대변해야 한다. 감정평가업계가 바라는 바는 감정평가업계와 한국감정원이 각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유명한 시의 한 구절이다. 존재의 본질과 가치는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한국감정원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100만번 불러봤자 국민에게 그 조직은 ‘의미 없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김남성 | 감정평가사사무소 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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