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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김호기 칼럼]가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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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말부터 올해 5월 초까지 한국일보에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라는 기획을 매주 연재했다.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서부터 현재까지 우리 지성사를 돌아보려는 게 그 의도였다. 60명의 지식인들이 그 대상이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다룬 이들은 시인·소설가·평론가를 포함한 문학가들이었다.

경향신문

문학가들이 다룬 주제들은 그렇다면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 민족과 역사와 사회가 일차적인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못지않게 우리 문학가들의 시선을 끈 주제는 가족이었다. 60명 중 한 사람인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은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사간 날, 첫날 밤 세 식구가 나란히 누운 자리에서 엄마는 감개무량한 듯이 말했다. ‘기어코 서울에도 말뚝을 박았구나. 비록 문밖이긴 하지만….’” 셋방살이를 끝내고 서울 현저동 꼭대기에 집을 장만해 이사한 날 밤 장면이다. 말뚝이 뜻하는 바는 세상의 거센 바람 속에서 식구들을 지켜줄 든든한 집이자 가족일 것이다.

“거칠기 짝이 없는 우리 집안의 / 한없이 순하고 아득한 바람과 물결 / … / 이것이 사랑이냐 / 낡아도 좋은 것은 사랑뿐이냐.” 60명 중 또 다른 문학가인 김수영의 시 <나의 가족>이다. 김수영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정의를 절규했다. 동시에 그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 역시 노래했다. 아무리 낡고 오래돼도 좋은 것은 가족의 사랑뿐이라는 그의 독백은 여전한 감동을 안겨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이들은 내가 왜 가족 이야기를 꺼냈는지 눈치챘을 듯하다. 5월은 가정의달이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이 있다. 어제 21일은 부부의날이었다. 돌아보면 가족은 민주주의, 시장과 함께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경이로운 제도다. 민주주의와 시장이 인간이 갖는 정치·경제적 합리성을 구현한 사회적 제도라면, 가족은 사적인 삶이 진행되는 개인적 제도다. 혈연과 친밀성을 기반으로 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가족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이 가족이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현재 1인 가구의 비율은 28.6%이고, 2인 가구는 26.8%다. 전체 가구의 55.4%가 1~2인 가구인 셈이다. 그리고 평균 가구원 수는 2.5명이다. 이러한 통계들은 민주주의와 시장 못지않게 가족 또한 극적인 변동을 겪어 왔음을 함의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1~2인 가구의 증가로 변화해온 이러한 흐름을 그렇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이에는 두 가지가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러한 경향은 가족의 해체라기보다 그 형태가 다양해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특정 가족 형태를 정상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으로 파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1인 가구의 증가 경향이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25년 31.3%에 도달하고 이후에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고령사회의 도래와 젊은 세대의 미혼 성향이 일차적인 원인을 이룬다. 이러한 1인 가구의 증가는 우리 사회를 혼밥·혼술·혼영의 ‘나 홀로 사회’로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나 홀로 사회에 대해 그렇다면 당사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에 대해선 지난해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연소득 1200만원 이상의 20~50대 2100명을 조사해 발표한 ‘1인 가구 보고서’가 주목할 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사는 이들은 한편으론 외롭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유로움과 나 홀로 사는 즐거움에 만족감을 보였다. 71.2%가 1인 생활에 만족한다는 응답과 여성의 평균 만족도(78.0%)가 남성(64.5%)보다 높다는 결과는 특기할 만하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개인주의의 증가 경향을 고려할 때 1인 가구의 증대는 비가역적 흐름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러한 흐름을 주목할 때 1인 가구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요청된다. 구체적으로 젊은 세대의 주거 대책과 고령 세대의 고독사를 포함한 노후 대책 등에 대한 복지정책들이 강화돼야 한다. 가족의 변화에 대해선 개인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처를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뭉클한 것 가운데 하나는 휴대폰에 저장한 가족의 사진이라고 생각해 왔다. 거기엔 더없이 잔잔한 기쁨, 차마 말하지 못했던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다. 가정의달을 보내면서 가족의 변동을 지켜보는 한 사회학자의 소회를 적어둔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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