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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세계 최빈국이지만 행복한 이유는 ‘자연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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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탄 생물성다양성센터 감독관 린첸 도르지

환경과공해연구회 ‘30돌 기념’ 초청

동북아생물다양성연과 한라산 답사

“부탄 고산지대 식물과 비슷해 신기”

열대림~7천m 설산 ‘생물종 핫스폿’

벵골호랑이 150마리 전국 ‘어슬렁’

“농지 국토 3%·기후변화 피해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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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고산지대에서 보는 소나무와 진달래 종류와 비슷한 종들을 한라산에서 보다니 참 놀랍고 신기합니다.”

지난 16일 한라산을 찾은 린첸 도르지(38·) 부탄 생물다양성센터 감독관은 임학 전공자답게 아고산 식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멸종위기종을 보전하고 자생식물의 표본을 관리하는 부탄의 몇 안 되는 책임자 가운데 하나인 그는 “이렇게 등산객이 많은데 국립공원을 잘 관리하는 게 놀랍다”며 “돌아가면 활용할만한 지식을 많이 배웠다”고 했다. 그로부터 ‘세계 생물다양성 핫 스폿(핵심 구역)’인 부탄의 자연보전 노력과 어려움 등을 들어보았다.

창립 30돌을 맞은 환경과공해연구회(회장 이은주 서울대 교수)와 동북아 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 박사) 초청으로 방한한 린첸이 국립생물자원관과 국립수목원에서 강의를 마치고 제주까지 한라산을 찾은 이유가 있었다. “부탄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 낀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73만으로 제주와 비슷합니다. 아열대에서 아고산대까지 있고 생물다양성이 높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인도와 맞닿은 부탄의 남부지역은 해발 200m로 울창한 아열대 숲이 펼쳐져 있지만, 북쪽에는 히말라야의 7000m급 설산이 즐비하다. 이런 고도차에 더해 빙하기와 간빙기가 닥쳐도 계곡과 고산지대로 숨어들 피난처가 있기 때문에 멸종을 피한 고대 생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세계적인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된 이유이다.

그가 나열한 부탄의 고등식물 종의 규모만해도 엄청나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절반이 채 안 되지만 식물종은 한반도와 비슷한 4524종에 이른다. 진달래속만 해도 한반도 통틀어 26종인데 부탄에는 46종이 있다. “4월과 5월 4800m 고산에 오르면 수십종의 진달래속 식물이 꽃을 피우는 장관을 연출한다”고 그는 전했다. 난초과 식물도 430종에 이른다.

150마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된 벵골호랑이부터 눈표범, 희귀 원숭이인 황금랑구르까지 약 200종의 포유류가 서식하기도 한다. 새는 724종이 기록됐는데, “기후변화로 이웃나라에서 자꾸 넘어와 해마다 종수가 는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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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탐사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도 많다. 그는 “해마다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동·식물 종이 발견되고 있다”며 “사람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가지 못 하도록 한 곳도 많아 앞으로 생물다양성 목록은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부탄 최고봉인 강카르 푼섬산(해발 7570m)은 신성한 산으로 간주해 지역 주민도 오르지 못하는데, 세계적으로 전인미답 산 가운데 최고봉이다. 또 빙하가 녹아 생긴 호수가 2만7000여개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접근도, 연구도 안 된 곳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자연을 보전할 수 있었을까. 그에게서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동물을 죽이는 걸 죄악시하는 종교가 오랫동안 부탄의 자연을 지켜주었습니다.” 부탄은 공식적으로 불교가 국교인 나라이다. “누구나 마음에 불교적 생각과 믿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전은 종교적으로 수행됩니다.”

그렇다고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법 조항은 헌법 5조 3항이다. 여기엔 “정부는 자연자원을 보전하고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국토의 60% 이상이 항상 숲으로 덮여 있도록 유지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현재 산림 비율은 72%이다.

여기에 국토의 절반이 국립공원, 자연보호구역,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고, 모든 보호구역이 회랑으로 연결돼 있다. 덕분에 아열대 정글에 있던 호랑이가 2년 뒤 4000m 고산지대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보전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농지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 “인구의 62%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농경지는 3%에 불과합니다. 식량을 자급하지 못합니다. 국토가 온통 산이다 보니 가파른 산비탈도 개간해 옥수수 등을 재배합니다.” 그는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힘들게 산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부탄 국민은 행복하다고 느낀다. 일찌기 1970년대부터 국민총생산(GNP)보다 국민총행복(GNH)이 중요하다며 실행해 온 나라다. 교육과 의료가 모두 무료다. 2015년 조사에서 국민의 91%가 “행복하다”고 답했다.

국민총행복은 건강, 생활수준 등 9개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생태적 다양성과 회복탄력성’이다. 자연을 보전하면 행복해진다는 얘기다.

부탄은 국내총생산(GDP)로는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1999년 텔레비전과 인터넷 보급을 처음 허용했고, 2008년 정년과 탄핵 규정이 있는 입헌군주제를 도입했다. 물질적 풍요와는 거리가 멀지만 생물다양성 말고도 풍요로운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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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첸은 “부탄은 ‘탄소 네거티브’ 국가”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나라가 내보내는 온실가스보다 공기로부터 흡수하는 양이 많다는 얘기다. 해마다 220만톤의 탄소를 방출하지만 숲이 그 3배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또 높은 낙차를 이용해 발전한 수력전기는 관광에 앞서 수출품 1위이다.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력발전은 환경을 고려해 잠재력의 절반만 개발하고, 수력전기를 이용한 전기차는 이미 전체 자동차의 10%를 넘겼다. 그는 “부탄은 지구 기후변화에 기여한 것이 거의 없는데 피해는 벌써 입고 있다”며 “봄에도 눈이 덮여 있어야 할 산이 녹색으로 바뀌고 빙하호가 사라지고 산사태가 빈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렵 방지 등 보전에는 돈이 많이 든다. 관광산업을 위해서도 도로와 건물, 쓰레기 처분장을 지어야 한다. 욕심이 없는 국민성이라지만 최근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생기면서 다른 생각이 퍼진다.

그는 해마다 봄철 벌어지는 동충하초 채집 소동을 소개했다. 5∼6월 히말라야의 땅속에서 월동하는 나방 애벌레에 자낭균의 일종이 기생해 생기는 ‘중국동충하초’는 금값의 3배에 팔린다(▶관련 기사: ‘히말라야의 황금’ 동충하초, 남획으로 사라진다).

그는 “주민들이 저마다 땅에 엎드려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다 곰팡이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으로 찾아낸다”며 “6월 한 달 동안 지역주민에게 특정 지역에서만 채취를 허용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쉽게 큰돈을 만지게 된 주민들은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나서지 않을까. 행복을 국가 정책으로 내세운 부탄의 고민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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