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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A팀장은 왜 쓴웃음을 지었을까···SK그룹 주4일 근무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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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SK그룹 컨트롤타워인 수펙스추구협의회와 지주회사 SK㈜가 격주로 주4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실제 주4일만 근무하는 직원은 많지 않다는 게 구성원들의 설명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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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저녁. SK그룹 A팀장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SK그룹이 구성원의 행복 증진을 위해 주4일 근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A팀장은 “웃픈(웃기면서 슬픈) 기사다. 사실관계가 틀린 건 없는데 나는 왜 아직도 퇴근을 못 하고 있느냐”며 웃었다. A팀장과 동료는 이날도 사무실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갔다.

SK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SUPEX추구협의회(수펙스)와 지주회사인 SK㈜는 지난 2월부터 격주로 주4일 근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다 올해부터는 미리 쉬는 주를 정해놓는다. 보통 둘째, 넷째 주 금요일을 쉬고 다섯째 주가 있는 달은 두 번만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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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 전경.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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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가운데 시범적으로라도 주4일 근무제를 도입한 것은 SK그룹이 처음이다. 이를 주도한 건 조대식 수펙스 의장이다. 조 의장은 “일할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주말을 길게 쉬자”며 주4일제를 도입했다. 수펙스는 법인이 아니어서 창립기념일이 없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12월 26일)을 기념일로 정해 연휴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A팀장처럼 수펙스·SK㈜ 직원 300여명 가운데 주4일 근무를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다 보니 업무가 많고, 300인 미만 사업장이어서 주52시간 의무 적용도 되지 않는다. 내년부터는 300인 미만 사업장도 주52시간 의무 적용이어서 주4일제 도입이 주52시간 초과 방지용이란 말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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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근무제 도입을 주도한 건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장이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조 의장이 2018 이천포럼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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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펙스·SK㈜ 직원은 다른 계열사처럼 근무시간을 정확히 측정하지 않는다. 직원 B씨는 “주52시간은커녕 주6일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라며 “내년부터 주52시간 대상이 되니까 일종의 ‘위험 회피’ 차원에서 주4일제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C팀장도 “해외 투자나 재무 담당 직원들은 주말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증시나 시장에 맞춰 업무를 하다 보면 밤낮이 바뀌기도 하고 야근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수펙스 직원이 대부분 계열사 소속 파견직원인 점도 애매하다. 수펙스 소속 D씨는 “친정(소속회사) 직원은 업무시간을 정확히 측정하고 주5일 근무에 연차도 눈치보지 않고 소진하지만 여기선 힘들다”고 말했다. 그룹 컨트롤 타워에 근무하는 자체가 경력에 도움이 되는 데다, 업무가 워낙 많아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을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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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근무제는 불가능하더라도 구성원의 행복증진을 위해 회사가 노력하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최태원(가운데) SK그룹 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다. 지난해 최 회장이 제주 디아넥스호텔에서 열린 ‘2018 CEO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SK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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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주4일제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는 게 내부 구성원의 설명이다. E팀장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일부 부서나 젊은 직원은 주4일제를 지키는 편이다. 옛 직급 기준으로 부장급 중간간부들은 대체로 한 달에 한 번쯤 금요일에 쉬고 일이 있으면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알아서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장(최태원 회장)의 방침이 구성원의 행복 증진이고 주52시간 제도가 자리 잡고 있으니 앞으로는 일하는 시간이 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주4일 근무제가 그룹 전체로 확대되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생산시설의 경우 교대근무가 불가피하고, 직원 수가 많은 계열사는 이미 주52시간을 지키고 있어서다. SK그룹 측은 “수펙스와 SK㈜의 주4일 근무는 집중적으로 일하자는 취지이며 그룹 차원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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